[기자의 눈]황재성/임인택장관의 이상한 행보

  • 입력 2002년 8월 4일 18시 20분


정부는 최근 호남고속철도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사업비만 10조5000억∼16조8000억원 으로 경부고속철도에 버금가는수준의 대역사(大役事)다. 그러나 이 사업을 주도하는 건설교통부 임인택(林寅澤) 장관의 최근 행보를 보면 걱정이 된다. 이원종(李元鐘) 충북도지사는 2일 임 장관을 면담한 뒤 “장관이 백지화 가능성을 밝혔다”고 말했다. 오후 1시경 이 발언이 알려지자 기자들은 수차례 장관실에 사실확인을 요구했다.

하지만 방문을 굳게 닫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임 장관은 오후 4시경에야 입을 열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백지화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임 장관은 지난달 24일 발표된 호남고속철도 기본계획안도 “연구용역단의 보고서 내용일 뿐 정부 의도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용역단이 건교부와 조율 없이 보고서를 발표했다는 말 역시 이해하기 힘든 대목.

임 장관이 호남고속철도 문제에 대해 이처럼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호남선과 경부선의 분기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해 지역갈등 조짐이 나타나는 등 골칫거리가 빈발하자 이를 일단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경부고속철도 사업은 90년 최초 계획 발표 때만 해도 98년까지 총사업비 5조8462억원만 투입하면 서울∼부산을 2시간 이내에 연결,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총사업비가 19조2205억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최종 개통시기는 2010년으로 10년 이상 늦춰졌다.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은 고속철도 건설경험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대선(大選)을 앞둔 92년 6월 설계 및 노선 확정도 안된 상태에서 착공식부터 하는 등 행정당국이 정치적 요구에 끌려다니면서 무책임 무소신으로 사업을 이끈 것도 큰 원인이었다.

호남고속철도는 사업 일정상 연말까지는 기본안을 만들어야 하므로 지금부터 연말까지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호남고속철이 경부고속철 사업의 닮은꼴이 되지 않으려면 당국자들의 책임감이 필요하다.

황재성기자 경제부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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