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88…밀양강 (4)

  • 입력 2002년 8월 2일 18시 51분


금줄을 지나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그런 짓을 했다가는, 자기 가족에게 상처를 준 나를 그 사람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 나는 그 사람의 가족이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일까.

어제는 낮부터 밖에 나가지 않았다. 가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화장을 하고 머리 손질을 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고 그 사람이 와주기를 기다리기만 했다.

태양이 그녀의 피부 위로 저물기 시작했을 때, 여자의 귀속에서 사립문이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툇마루에 앉았다.

오늘은 정말 5분만 있다가 가야 한다.

들어와예.

들어갈 시간 없어.

5분의 길이는 당신이 정하는 게 아니라예. 시계도 아니고예. 내가 5분이 지났다고 하면 돌아가도 좋아예. 내가 아직이라고 하면 아직인기라예.

남자는 고무신을 벗지 않고 삼나무만 올려다보았다.

신사 세울 때 일본 사람이 심었제, 아마.

내가 열한 살 때였으니까, 벌써 14년 전이네예.

남자는 물끄러미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자는 아름다웠다. 키는 1백50 센티미터가 채 안 되고 가냘펐지만 비단결처럼 매끄러운 피부와 저고리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가슴이 풍만했다. 거뭇거뭇하고 굵은 눈썹은 눈꼬리가 길게 째진 눈을 강조하여 눈가만 보면 고집 센 계집 같지만, 가는 붓으로 그린 듯한 콧날과 갓 벌어진 벚꽃 같은 입술에 얼굴 전체의 인상은 부드러웠다.

미령.

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렀다.

여자는 말없이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자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다. 남자가 더욱 더 보아주었으면 싶었다. 남자의 눈길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여자 따위 쳐다보지도 말았으면 싶었다. 남자의 눈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여자는 고름을 풀고 저고리를 스르륵 벗어내리고, 속적삼의 깃을 벌려 가슴을 드러냈다.

용하.

여자도 남자의 이름을 처음 불렀다.

용하, 용하, 용하, 용하.

남자의 이름을 속삭이고,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여자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흘렀다. 비 같은 물방울이 저녁 햇살에 물든 유방 사이 골짜기로 흘러내렸다. 너무도 아름다워 남자는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손을 뻗은 것은 여자 쪽이었다. 녹아든 그림자와 그림자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저녁 어스름에 누워,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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