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이리에 아키라/한-일 ´祝祭이후´도 함께 가자

  • 입력 2002년 7월 17일 18시 41분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가 열린 6월 나는 일본, 주로 도쿄에 머물렀다. TV로 경기를 관전하거나 신문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에는 그것을 다뤄보고 싶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월드컵의 긍정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양국 팀은 예상외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특히 한국이 4강에 오른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일본팀이 터키에 패한 뒤 많은 일본인이 한국을 응원했다는 사실에 대해 한국 측에서도 호감을 갖고 받아들인 것 같다. 한일 공동주최라는 실험도 전체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내셔널리즘 한계 직시해야▼

그런 긍정적인 평가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지만 월드컵의 성공이 향후 한일관계에도 반영되기 위해서는 한층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감히 한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근본적으로는 내셔널리즘과 한일관계 개선을 어디까지 양립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나는 요즘 이른바 ‘국기를 흔드는 애국주의(flag waving patriotism)’에 저항감을 느낀다.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군중이 깃발을 흔들거나 국기를 신성화하는 것은 자국의 선민의식을 고양시켜 배타적 내셔널리즘을 고취하는 것으로 세계 각국의 연대감을 양성하는 데 장애가 된다.

특히 일본은 일장기를 내걸고 아시아 각지에 진출한 역사가 있는 만큼 일장기를 정식 국기로 채택하려는 움직임은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월드컵에서는 열광적으로 국기를 흔들며 타국을 배척한다기보다는 일장기를 얼굴에 그리거나 몸에 두르는 등 천진난만한 장식물로 사용해 일본팀을 응원하는 현상이 있었다.

그것이 잠재적, 맹목적인 애국주의로 변질되지 않는다는 절대 보장은 없지만 내셔널리즘이 비장함을 동반하지 않는, 축제 기분에 따른 것이라면 그다지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많은 일본인이 해외에서 온 선수나 응원단들을 개방적인 태도로 대하며 각종 민간 자원봉사조직을 만들어 그들을 대접하고 안내한 것은 일본과 해외 각국과의 문화적, 심리적인 거리를 줄여 내셔널리즘이 국제친선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일본 이상으로 국기를 휘감고 한국팀에 열광적인 성원을 보냈으며 준결승까지 간 것을 민족의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동시에 아시아에서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것에 대한 기개도, 전 세계에서 온 축구 최강팀의 호스트로서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아사히신문과 동아일보가 월드컵 직후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일 공동 개최가 좋았다고 답한 사람은 42%에 그쳤고 한국이 단독 개최했어야 했다는 사람이 54%에 이르러 일본에 대한 불신감이 뿌리깊게 남아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그런 불신감을 조금이라도 줄여나가려면 내셔널리즘의 한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번 경우에는 내셔널리즘은 축구경기장에 국한됐고 경기종료 후 각 국민이 교류하는 국제주의로 이어졌지만 ‘축제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스포츠내셔널리즘을 스포츠인터내셔널리즘으로 바꾸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스포츠가 끝난 뒤 내셔널리즘만 남는다면 그것은 문제다. 지금의 일본에는 정계 매스컴, 그리고 일부 학자들 사이에 자국 중심적인 배타적 선민의식이 보인다. 그런 경향이 계속되는 한 안정된 한일우호관계는 쌓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월드컵은 세계 모두가 공유한 체험이었다고 보는 공감대가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말은 ‘공유’라고 생각한다.

▼같은 경험 바탕으로 연대를▼

인류 모두가 ‘지구촌’에 살면서 서로의 운명이나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세계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도 인류 전체의 관심사이다.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국경을 뛰어넘는 연대감을 만들어 간다. 그런 연대감 없이는 국제사회의 평화도 안정도 있을 수 없다.

공유해야 하는 것은 현실 문제만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도 공유해야 한다. 만약 월드컵의 성공에 대해 한일 양국민이 어느 정도 공통의 기억을 가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역사를 공유하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내셔널리즘의 틀 안에서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라는 틀 안에서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역사를 공유하려 노력한다면 그것은 월드컵보다 한층 더 의미 있는 사업이 될 것이다.

이리에 아키라 美 하버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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