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실세에 돈 많이 갖다줬다­˝

  • 입력 2002년 7월 11일 18시 36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金弘業) 전 아태평화재단 부이사장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가 나온 뒤 경제계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특히 김씨에게 각각 16억원과 5억원을 준 현대와 삼성 측은 혹시 청와대로 책임을 떠넘기는 인상을 줘 ‘괘씸죄’에 걸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해당 기업이 자발적으로 거액을 건넸다’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발표 내용에 대해서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김씨의 범죄 혐의가 더 충격을 준 것은 현 정부 출범 후 여권(與圈)이 틈만 나면 털어놓은 ‘자랑’과도 무관하지 않다.

신흥 권력층 인사들과 벤처기업을 둘러싼 비리로 물의를 빚을 때마다 정권 핵심부는 “우리는 과거 정권들과 달리 대기업에는 한번도 손을 벌리지 않았다”며 ‘정권의 도덕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정(失政)에 대한 비판에는 목소리를 높여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반(反)개혁적 준동’으로 몰아붙였다.

‘기업 개혁’의 칼을 빼들었던 현 정부에서 권력과 대기업간의 관계는 과연 어땠을까. 일부 그룹 임직원들이 취재원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털어놓은 실태는 이렇다.

“권력 실세(實勢)들에게 돈을 많이 갖다주었다.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기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A씨)

“부탁이 들어오면 너무 무리한 것은 거절하지만 아태재단 기부 등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 안될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B씨)

“군사정권 때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현 정권은 최소한 돈 문제에 관한 한 김영삼(金泳三)정권 때보다도 훨씬 후퇴했다. 권력핵심부의 비리는 앞으로도 더 터질 것이다.”(C씨)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의 부패는 국민의 비난과 저항에 직면한다. 더구나 ‘정의(正義)와 개혁’의 슬로건을 독점하며 겉다르고 속다른 행태를 보이면 냉소와 조롱, 도덕적 허무주의까지 확산시킨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한 구심점이었던 현 집권세력이 보여온 타락과 몰락의 과정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권순활기자 경제부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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