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플로이드의 오래된 집'

  • 입력 2002년 7월 5일 18시 33분


존 마르케제
존 마르케제
◇ '플로이드의 오래된 집'/존 마르케제 지음 지소철 옮김/ 263쪽 8000원 뜨인돌

이 책의 원제는 ‘리노베이션(renovations)’이다. 어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말이 ‘다시(re)새롭게(nova)하기’라는 뜻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이 책은 낡은 집을 사들여 수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시에, 살아가면서 조금씩 헐고 물 새고 삐걱거리게 된 관계를 함께 땀흘리며 ‘개수(改修)’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필자인 아들은 뉴욕타임스 등에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 ‘대학 들어가는 아이들이 손으로 꼽을 정도’인 소읍에서 대도시의 지식사회로 진출한 뒤 전원의 한적한 삶이라는 꿈을 실현하려 한다.

집을 고르는 데서부터 전직 건설노동자인 아버지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애써 눈도장 찍어놓은 집도 ‘무슨 집이 이렇게 허술하냐?’라는 퇴짜를 맞기 일쑤. 나이든 ‘전문가’ 아버지와 30대 후반의 백면서생 아들은 결국 적당한 집을 사들인 뒤 팔을 걷어부치고 수리에 들어가지만, 아마추어인 아들의 일하는 솜씨가 아버지의 마음에 찰 리 없다.

◆ 갈등

“무슨 일을 해도 꼭 두 번씩 해야 하나요? 내가 할 때 한 번,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버지가 다시 할 때 또 한번?” 속이 부글부글 끓는 아들의 항의에도 아버지의 타박은 멈추지를 않는다. “이렇게 일하면 넌 해고야…격심한 모욕감과 고통이 속에서 끓어오른다. 마치 아버지가 나사들을 내 턱뼈에다 박고 있는 느낌이다.”

◆ 연민

그렇지만 프로페셔널인 아버지도 실수를 한다. 임시 문턱을 설치한 뒤 실수로 그걸 밟아 부순 아버지의 얼굴에 참담함이 묻어난다.

슈퍼마켓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아버지는 며칠 동안 일을 쉰다. “하루종일 내가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 지 얘기하고, 내 손에서 연장을 뺏어 쥐고 직접 일을 해버리는 노인이 없었다. 나는 그 분이 그리웠다.”

◆ 찬탄

“12층 저 위에 패널판을 붙인 사람이 누구인지 맞춰 보아라.” 소읍에서 자란 어린시절부터 지겹도록 들은 그런 자랑이 아들에게 감탄스러울 리 없다. 그러나 온갖 어려운 일을 체험한 지금에는 생각이 다르다. “정말로 대단한 일처럼 보인다…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폭 2피트의 발판을 타고 12층으로 올라가다니…아버지는 스파이더맨!”

◆ 화해

아버지와 아들의 수많은 대화가 이 책에 등장한다. 그러나 더 많은 부분 책을 수놓고 있는 것은, ‘먹물’ 아들이 내면에서 나누는 자신과의 대화다. 무엇이었던가. 그동안 아버지와의 사이에 씻어지지 않는 앙금을 담아두도록 했던 것은.

아들은 트럼페터가 되겠다던 자신에게 ‘비빌 언덕이 있어야지’라며 조소를 보내던 아버지의 옛 모습을 기억한다. 아버지와 함께 트럼펫을 사러 뉴욕으로 갔다가 싸구려를 집어들고는 부루퉁해져 집으로 돌아오던 길도 떠올린다. “아버지께서 경고하셨어. 꿈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옥수수가 자라지 않는 곳에서.” 노래가 흐르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여보 여보!” 갑자기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른다. “여기 내려와서 이것 좀 봐요. 얘와 내가 한 번에 완벽하게 해냈다구. 우리가 해냈어.”

◆ 그리고

가족의 애증과 화해를 다룬 미국식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로만 본다면 책에 담긴 그밖의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저자는 육체노동으로부터의 지식계급의 이탈을, ‘침대에서 잠만 잘 줄 알았지 침대 하나 내 손으로 만들 줄 모르는’ 소외를 염려한다. 안정된 중산층을 향한 미국 노동계층의 꿈이 1970년대 이후 붕괴되는 과정 등도 담담히 그려지고 있다.

올해 5월 출간된 이 책의 원저는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독자평점 5점 ‘만점’을 기록중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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