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천표/공자금 원금 상환이 먼저다

  • 입력 2002년 7월 3일 19시 04분


공적자금 투입분 중 69조원이 회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추정되고 이미 이자로 18조원이 지급되어 현 시점의 국민부담이 87조원이라는 정부 추계가 나왔다. 그러자 이미 지급된 이자를 제외하고 남은 69조원을 앞으로 어떻게 분담해야 좋으냐에 대한 논란이 즉각 대두됐다. 더불어 왜 회수율이 이같이 낮은지, 그간 공적자금 투입과 운영에 관한 정책적 판단의 잘못이나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는 등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또 금융권이 20조원을 부담하고 재정이 나머지 49조원을 부담한다는 분담안이 정당한 것이냐 하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의 대처와 관련해 그 선후나 경중을 고려해 볼 때 손실분담의 확정문제나 회수 불능분 추정의 정확성 검증 문제는 결코 시급하거나 핵심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반면 미처 제기되지는 않았으나 원금으로서의 공적자금 채무를 최선의 방도를 통해 줄임으로써 앞으로 늘어날 이자 형태의 국민부담을 최소화하는 과업은 훨씬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자금을 투여한 사람들의 적극적 경영감시 성향을 활용해 지배구조 문제에 대처하는 것도 긴요하다.

매일 증가하는 이자부담의 규모를 알기 위해서는 156조원의 투입분 중 회수된 것과 재투입된 것을 감안한 현 시점에서의 순투입(純投入), 또는 공적자금 채무의 형식적 채무자인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의 현 시점에서의 채무 잔액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수치는 발표되지 않았다. 아마도 투입분의 대부분이 아직 채무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들 잔액에 대해서는 지금도 계속 이자가 발생해 국민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이자율 7%를 전제할 때 이들 공적자금 채무에 대한 이자부담은 연 평균 10조원 가까이 된다. 공적자금 원금에 대한 상환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국민부담이 매년 10조원에 가까이 새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담 증가는 6년이면 69조원에 상당할 만큼 큰 규모다. 그런데 몸통격인 이 무서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다고 하는 논의는 외면한 채 이미 발생한 69조원의 부담 배분에만 열을 올리거나 이를 25년에 걸쳐 부담토록 한다는 한가한 논의에 그치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손실분담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더 이상의 국민부담 증가를 줄이는 것은 더 중요한 문제다. 98년의 외환위기 상황에서는 재무구조가 극히 취약해진 우리 금융기관과 기업들에 자본을 투입하여 자본충실화를 꾀할 수밖에 없었으나 공적자금의 투입이 과연 자본충실화를 위한 최선의 방도였는가 하는 것은 당시 점검했어야 할 사안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더 이상 비상시국이라고 할 수 없는 시점이다. 이제는 많은 도덕적 해이가 개재되어 왔던 공적자금 투입 위주의 안이한 구조조정을 지양하기 위해 상환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민간자본을 보다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에 참여시키는 작업이 시급하다. 우리 경제에는 동원 가능한 민간자본의 제1차적인 자금 풀로서 이른바 부동자금이라는 것이 있다. 보는 입장에 따라 이것의 규모는 220조원 내지 350조원이나 된다.

이천표 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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