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세계화의 '재앙' 피할수 있다 '부의 분배'

  • 입력 2002년 6월 28일 18시 23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민들이정부의 경제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민들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부의 분배/에단 캡스타인 지음 노혜숙 옮김/240쪽 1만3000원 생각의나무

‘월드컵’ 막판에 터진 미국 ‘월드컴’ 사태는 곧바로 한국 증시의 폭락을 몰고 왔다. 엔터키 하나로 마무리되는 자본의 신속한 이동이 지구를 하나로 묶어놓은 결과다. 이른바 ‘세계화’가 건네준 반갑지 않은 선물인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잘 아는 두 마리 토끼에 관한 이야기다. ‘성장’과 ‘분배’라는 귀엽지도 않은 이름을 가진 이 두 토끼는 서로 피해다녀서, 둘을 동시에 붙잡는 것은 백일몽에 불과한 걸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토끼 설화’를 전복하고자 한다. 조금만 멀리 내다보면 두 토끼가 만나 나란히 갈 길이 보이므로, 지키고 섰다가 귀를 낚아채 양손에 들고 가면 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세계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선택의 폭은 좁다. 분배와 복지에 무게중심을 두는 정부는 높은 세율과 각종 규제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구름이 지도 위의 저기압을 향해 모이듯, 이미 국경이 없어진 자본은 저세율 저규제 저임금을 향해 모이기 때문에 전통적 개념의 ‘복지국가’는 투자자들로부터 인기를 잃게 된다.

페소화 폭락을 알리는 신문 헤드라인

“우리는 냉혹하다. 우리는 치솟는 실업률과 떨어지는 이자율, 구조조정을 사랑한다.” 한 투자은행가가 월스트리트저널에 밝힌 말은 세계화 국면에서의 자본주의의 냉혹성을 잘 요약 설명해준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근로자를 착취하는 해외 자본을 물리치고 고립주의의 길을 갈 것인가? 열심히 일하고 평등하게 나누어 잘 살 것인가?

잠깐, 저자는 자신이 개방 경제의 신봉자임을 거리낌 없이 밝히고 있다. 그가 밝히는 집필의 변이 “세계화를 그 적들로부터, 그리고 그 광신도들로부터 구제하기 위해”라는 것 역시 명백하다. 요컨대 무한이윤을 향해 폭주하는 신자유주의에 지금 제동을 걸어주지 않으면 대형사고가 일어날 것이 뻔하니 바람직한 교통규칙을 다시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런 인식은 엄연한 역사의 교훈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가 노동계층에게 적절한 안전망을 제공해주지 않은 결과 볼셰비키 혁명과 파시즘의 대두를 초래하게 됐다. 2차대전후 서구는 공산주의라는 강력한 경쟁자 앞에서 복지국가라는 안전한 사회적 약속을 노동계층에 마련해주어야 했다. 가진자들이 선하기 때문에 나누어준 것이 아니라, 나누어주면 ‘안정’이라는 선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나누어준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붕괴에 이은 1990년대 이후 서구 각국 사회체제가 겪은 여정은 이러한 전후체제의 안정으로부터 뒷걸음쳐온 모습에 다름아니다. 실업의 확대와 소득의 격차는 각국에서 사회적 불안정을 잉태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엉뚱하게 외국인 노동자에 화살을 돌리고 있지만, 이들의 무죄가 명백해지고 불안정이 더욱 심화되면 사회 전체의 지반위에 펼쳐질 심각한 균열이 뻔히 내다보이는 것이다.

‘분배’의 강조가 가져다줄 이득은 단지 사회의 ‘보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복지의 강조는 노동자를 시장으로 데려다주며 이는 내수의 진작으로 이어진다. 균등한 교육기회의 부여는 사회 전체가 한정된 인적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며, 이는 사회 전체 경쟁력의 제고로 이어진다. 소수점 아래 몇자리의 세율 인상으로 빠져나갈 해외투자로 겪는 손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의 결론적인 메시지는 “공정한 경쟁으로 더 많은 부를 양산한 뒤 일부를 사회적 패자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명쾌한 하나의 해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책이 제안하는 답안목록은 포괄적이고 다층적이다. ‘기존의 국제제도 안에서 노동자를 위한 발언권을 부여하며, 무역 자유화의 결실을 노동자에 대한 보상제도로 연결하는데 각국 정부와 세계기구가 나서야 한다’는 결론은 ‘누가 주도하나’라는 냉소적 반응을 낳을 수도 있지만, 저자가 경고하는 위기가 현실화되기 전에 그 ‘주도자’를 찾아낸다면 더 현명한 일이 될지 모른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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