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천재 시인의 최후 '죽기전 100일 동안'

  • 입력 2002년 6월 21일 19시 12분


화가 세번이 1818년 유화로 그린23세때 존 키츠의 초상화
화가 세번이 1818년 유화로 그린
23세때 존 키츠의 초상화
◇ 죽기전 100일 동안/존 에반젤리스트 월시 지음 이종인 옮김/320쪽 1만5000원 마음산책

퓨즈가 타버리듯 사랑이 왔고 시인은 갔다.

요절한 천재들은 대개 타오르는 사랑과 질병으로 ‘혼자’ 죽어가면서 타인과 나눌 수 없는 그 마지막 공백의 시간 속에 자신만의 불멸의 전설을 묻어둔다. 영국 시문학사에 불멸의 3대 오드인 ‘희랍 항아리에 부쳐’ ‘나이팅게일에게’ ‘우울에 관한 노래’ 등을 바치고 스물 다섯의 나이에 먼 이역의 땅 로마에서 숨을 거둔 천재 시인. 바람을 맞으면 저절로 울린다는 에올리언 하프처럼 섬세하고 격동적인 마음을 스스로 가졌고 또한 에올리언 하프처럼 바람둥이 기질을 가진 약혼녀 페니 브론에 대해 ‘사랑과 의혹’이라는 풀길 없는 이율배반의 폭력성에 혹사당하면서 죽어간 뜨거운 연인 존 키츠.

미국의 유명한 전기 작가 존 에반젤리스트 월시가 쓴 ‘죽기전 100일 동안’은 25세로 요절한 낭만주의 천재 시인 존 키츠의 최후의 나날 속에 감추어져 있던 죽음의 전설을 죽기 직전까지 시인을 간호하며 돌보았던 친구 세번이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글과 시인이 무도회와 사교계를 좋아한다고 그렇게도 비난했던 ‘밍크스(왈가닥)’ 약혼녀 페니 브론에게 빗발처럼 보낸 연애 편지글, 페니 브론이 키츠의 여동생 페니 키츠에게 보낸 진실한 편지글들을 따라 시인의 최후를 재창조했다. 왜 시인은 죽기 전에 런던을 떠나 로마로 갔고 충실한 친구이자 화가인 세번의 우정어린 간호를 받으며 스페인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로마 26번지 집에서 어떻게 죽어갔는가, 치명적 연인이자 약혼녀였던 페니 브론과 존 키츠는 대체 어떤 사랑을 가졌기에 키츠 사후에 페니 브론과의 사랑이 신경이 연약한 시인을 죽였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가, 왜 시인은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누워 있노라”와 같은 수수께끼 같은 묘비명을 고집했는가 등을 존 월시는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오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 내 몸 안에 남아있는 그녀의 추억이 일만 개의 창이 되어 나를 찌르고 있어. 설령 내게 회복의 기회가 있다고 해도 이 열정이 나를 죽이고 말거야”라고 시인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과, 마지막 병상에서 친구 세번에게 “페니에 대한 사랑이 나를 죽였다. 그녀의 편지를 내 관 속에 넣어줘. 아니 그녀의 편지를 내 관 속에 절대로 넣지 말아줘”라고 했던 시인의 이율배반을 종합해 우리는 젊은 사랑 속에 작열하는 슬픈 파괴성이란 괴물스런 운명을 보게 된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함께 격렬하게 타오른다고 하지만 존 키츠의 경우처럼 에로스가 타나토스를 주술적으로 불러오고 타나토스가 에로스를 격렬하게 학대하여 순식간에 퓨즈가 타버리듯 소멸을 완성하는 애정의 폭력성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하겠다.

문단에서 시인을 죽게 만들었다는 오해를 받으며 ‘나쁜 여자’의 대명사가 되었던 페니 브론은 페니가 키츠의 여동생에게 보낸 진실한 편지글들이 나온 후 많이 수정되어 지금은 “시인의 진정한 뮤즈였다”는 평가와 “감상적이지 않고 통찰력이 뛰어난 남에게 힘을 주는 생기있는 여자”라는 좋은 평이 나오고 있다. 로마 26번지에서 시인을 돌보았던 화가 세번은 그 뒤 우정과 헌신으로 시인을 돌본 사람으로 유명해져서 화가로도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필자는 로마 스페인 광장 26번지 창이 활짝 열린 존 키츠의 병상에서 그의 고백을 듣고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의 마지막 시간의 내면을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김승희(시인·서강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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