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대통령과 정보

  • 입력 2002년 5월 21일 18시 34분


<사례 1>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이 시작된 1941년 12월 7일 새벽, 워싱턴 당국은 한 장의 해독된 암호 전문을 접수했다. 태평양 지역 일본군의 교신 내용을 감청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전문은 그날 오후 1시에 기습공격이 시작된다고만 했을 뿐 어느 곳이 목표인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해군장관 프랭크 녹스 등 미 수뇌부는 일본군의 목표가 막연하게 필리핀이나 동남아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전문은 하와이 주둔 미군에 전달조차 되지 않았고, 미국은 건국 이래 최악의 군사적 타격을 입었다.

▷<사례 2> 1961년 4월 16일 저녁, 쿠바 피그만에 7척의 공격함대가 조용히 닻을 내렸다. ‘미국의 뒷마당’ 중남미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장악한 쿠바는 한 마디로 눈엣가시였다. 이에 따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시절부터 카스트로 제거 공작을 계획했던 미 중앙정보국(CIA)은 그해 초에 갓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설득해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러나 목표지점에 도착한 침공 부대는 자기 눈을 의심해야 했다. 늪지대였던 피그만 일대가 마치 뉴욕 남단의 유원지인 코니아일랜드처럼 변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작전이 진행된 것이다. 쿠바군에 노출된 1400명의 침공군은 격심한 포격을 받은 끝에 사흘을 못 버티고 궤멸됐다.

▷정보기관과 국가정보체계를 다루는 정보학(Intelligence Studies)에서는 사례 연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 성공한 비밀공작은 공개되지 않는 법인 만큼 여기서 말하는 것은 대부분 실패 사례다. 미국의 경우 진주만 기습과 피그만 참사 등이 대표적인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의 예이다. 이 같은 정보 실패의 원인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부적절한 정보 보고, 정보의 최종 소비자로서 대통령의 그릇된 정보 평가 및 대응, 정략적 이해관계에 치우친 정보 해석, 정보기관 사이의 협조체제 미비, 관료주의 등이 꼽힌다.

▷지금 미국은 지난해 9·11테러참사를 또 하나의 정보 실패 사례로 기록하려는 분위기다. 처음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사전에 테러 가능성을 보고받았느냐가 말썽이 됐다가 점차 총체적인 ‘정부 실패’로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제3자인 우리도 이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가장 분명한 것 하나는 대통령이 국가정보를 경시했다간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는 사실. 다음번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유념할 대목이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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