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타]‘후보출전’ 월드컵서 깜짝 득점왕 스킬라치

  • 입력 2002년 5월 17일 19시 03분


“숨어 있던 용(龍)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 여의주를 희롱하다.”

살바토레 스킬라치.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깜짝 출현’도 기억할 것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홈팀 이탈리아대표로 뛴 그는 국내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그러나 월드컵 무대에 올라서자 마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대활약을 펼쳤다.

스킬라치는 월드컵이 시작되기 2개월 전에야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나마 각종 경기에서 내내 후보신세였다. 당시 이탈리아의 첫 상대는 오스트리아. 후반 30분이 지날 때까지 양팀은 득점이 없었다. 그 때 이탈리아의 비치니 감독은 벤치에 앉아 있던 스킬라치를 투입했다.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고 게임의 흐름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 그러나 스킬라치는 투입되자마자 비알리의 패스를 받아 점프 헤딩 슛, 상대의 골네트를 갈랐다. 월드컵에 출전하자마자 처음 날린 슛이 그대로 결승골이 됐다.

스킬라치의 골사냥은 계속됐다. 체코와의 조별리그 경기. 스킬라치는 번번이 돌파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사람들은 스킬라치가 교체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감독은 스킬라치가 아니라 미드필더 베르디를 교체했다. 스킬라치에게 이어지는 패스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킬라치는 이에 화답하듯 선제골을 넣었고 팀은 2-0으로 승리했다.

아일랜드와의 준준결승. 스킬라치는 선제 결승골을 터뜨렸다.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스킬라치는 다시 선제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승리는 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격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3-4로 졌다. 스킬라치는 경기가 끝난 뒤 고개를 숙인 채 한 참 동안 그라운드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3,4위전에서 한 골을 더 넣어 6골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시칠리 출신의 스킬라치는 프로무대에 데뷔하는데도 오래 걸렸고 데뷔 이후에도 2부리그에서 오랫동안 지냈다.

그 후 명문 유벤투스로 옮겨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으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다 후보로 참가한 월드컵에서 그야말로 마음껏 날개를 펼친 것이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그는 무명을 씻어내려는 끈질긴 집념과 승부근성이 있었고 마침내 기회를 맞아 우뚝 섰다.

그는 역대 월드컵 득점왕 중에서도 가장 팀 기여도가 높은 인물로 꼽힌다. 그가 넣은 6골 중 4골이 결승골. 이같은 기여도로 인해 그는 득점왕과 기자단 투표로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그는 더 이상 무명이 아니었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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