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골! 골! 골!

  • 입력 2002년 5월 17일 18시 35분


모처럼 후련한 경기를 보았다. 그저께 열린 한국월드컵대표팀과 스코틀랜드의 평가전 얘기다. 그동안 대표팀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온 국민이 불안해하던 터라 더욱 기분이 좋다. 스코틀랜드가 어떤 팀인가. 거칠고 힘 좋기로 소문난 유럽의 강호 아닌가. 시차적응이 안됐고 대표선수들이 많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스코틀랜드를 이렇게 간단히 잡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재방송을 통해 몇 번을 보아도 짜릿한 4골이다. 그렇게 좁아만 보이던 월드컵 16강 문이 이제 활짝 열리는 느낌이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 얼마 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렇게 장담할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턱없는 흰소리로 여겼다. 오죽하면 그를 ‘속 빈 강정’으로 깎아내리기까지 했을까. 그런데 이젠 달라졌다. 축구 지도자들이 너도나도 대표팀 캠프를 찾아가 훈련내용을 지켜본다고 한다. 그의 무엇이 대표팀을 이렇게 바꿔놓았을까. 평가전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뚝심, 바로 ‘히딩크식 경영’일 게다. “패배에 굴하지 않는 정신력을 알기에 평가전 상대로 강한 팀을 선택한다”는 그의 말에서 감독과 선수 사이에 뿌리내린 끈끈한 신뢰가 묻어난다.

▷축구만큼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운 경기도 드물다. 전 후반 내내 몰리다가도 단 한번의 공격으로 골을 넣어 이길 수 있는 경기가 바로 축구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미국이 잉글랜드를 그렇게 꺾었고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동독이 서독을 그렇게 꺾었다. 이 같은 절묘한 반전에 축구의 묘미가 있다. 그러기에 축구를 인생살이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공은 둥글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터이다.

▷대표팀 공격수인 황선홍에게 작은아버지가 보낸 편지는 조카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훈련 때문에 할아버지 빈소를 지키지 못한 조카를 안쓰러워하는 대목에선 가슴이 뭉클해진다. ‘노랑머리’ 이천수와 대표팀 탈락 문 앞까지 갔던 ‘두 정환’(안정환과 윤정환)의 분전은 아름답다. 또 지겹도록 따라다니던 ‘불운’의 딱지를 털어내려는 이을용의 몸부림도 심금을 울린다. 스코틀랜드전에서 터진 4골은 이처럼 눈물겨운 노력의 결정체다. 땀에 젖은 선수들이 더욱 대견스럽게 보이는 것은 그래서일 게다. 이제 13번의 낮과 밤이 지나면 월드컵이 열린다. 스코틀랜드팀 감독이 혀를 내두르며 한 말처럼 우리의 16강 진출은 이제 꿈이 아니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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