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갈색탱크' 세계그린 점령…소작농 아들서 PGA평정 최경주

  • 입력 2002년 5월 6일 18시 08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한국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정상에 오른 최경주(崔京周·32·슈페리어). 그의 첫 인상은 영화 속 ‘킬러’처럼 날카롭다. 특히 플레이를 할 때 보면 ‘굶주린 맹수의 이글거리는 눈빛’ 그대로다.

전남 완도의 가난한 소작농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골프로 성공하겠다’며 무일푼으로 단신 상경한 16세 소년이 겪었을 고생으로 보아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특히 정규대회보다 더욱 피를 말린다는 미국PGA투어 퀄리파잉스쿨(프로테스트)을 두 차례나 치른 그가 생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진 것은 독기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최경주 페어웨이 레이업(18H)
연속사진: NHK화면촬영

최경주 환상의 칩샷(17H)
연속사진: NHK화면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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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면 학비를 면제받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어 중학교 때 역도를 시작한 그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완도 수산고 1학년 때. 당시 마을유지 추강래(秋康來·48·사업)씨의 권유와 체육교사의 추천으로 ‘전망 있는’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로 인생 승부를 걸겠다고 결심한 그는 서울 한서고로 전학했고 군 복무 후 서울시장배에서 우승한 뒤 본격적인 프로테스트 준비에 들어갔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 어려웠을 때 알았던 교회 목사의 소개로 아내(김현정씨)를 처음 만난 것은 그 시절. 당시 단국대 법대생이었던 김씨는 그에게는 마음의 평안을 주는 ‘구세주’였다. 최경주는 “프로대회에서 우승하면 결혼해도 좋다”는 허락을 처가로부터 받아낸 뒤 와신상담 벼른 끝에 프로 데뷔 2년만인 95년 팬텀오픈에서 우승했고 그해 12월 결혼에 골인했다.

가정을 꾸려 안정을 찾은 최경주의 골프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에 익숙한 그는 국내 무대에 안주하지 않았다. 눈을 미국으로 돌려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했다. 그는 한국 골퍼로서는 처음으로 99년 미국PGA 프로테스트를 통과했다. 하지만 2000년 첫 시즌에서 상금랭킹 134위로 풀시드를 잃어버리며 최대 고비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퀄리파잉스쿨을 두 번째 통과하며 스스로 다시 기회를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진출 3년째인 올해 꿈에 그리던 미국PGA 정상에 등극했다.

앞만 보고 가는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PGA투어 관계자들로부터 ‘갈색 탱크’로 불리는 그는 플레이를 할 때면 마치 전투에 나선 전사처럼 표정이 거칠고 매서운 것으로 소문나 있다.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예요. 샤프트도 부드러운 레귤러를 쓰죠. 부드러운 것이 더 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경주를 직접 만나 얘기한 사람들은 모두 외모와는 달리 부드러움과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묻어난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 그의 또 다른 목표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대회 정상 등극이다. “좋은 결과는 노력하는 과정과 신의 섭리에 따른다”고 굳게 믿는 그의 신념과 두둑한 배짱이라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이번 우승으로 확실히 보여줬다.

안영식기자 ysahn@donga.com

▼[최경주 현지 인터뷰]"한국인 긍지살려 신발에 태극기"▼

“한국인으로 처음 미국 무대에서 우승하게 돼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최경주는 우승을 확정지은 직후 18번홀 그린에서 가진 현장 인터뷰에서 “미국 프로무대 정상에 오른 것은 귀중한 경험이었다”며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다음은 최경주와의 일문일답.

-첫 우승 소감은….

“그 힘들다는 PGA대회를 데뷔 3년 만에 우승해 더 감사하게 생각한다. 처음 미국에 올 때 10년 내 우승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신발 뒤꿈치에 태극기를 달고 나왔는데….

“PGA투어 무대에도 한국인이 있음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사실 작년부터 골프백에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다. PGA투어에서 언제나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뛰었다.”

-시즌 초와 비교할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약 한달 전 베이힐클래식부터 샤프트를 스틸 샤프트에서 MCC아파치 그라파이트샤프트로 바꿨는데 비교적 가벼워 체력 소모가 적어졌고 거리와 정확도도 향상되는 등 샷에 자신감이 생겼다. 특히 아이언샷이 상당히 좋아졌다.”

-이번 우승이 한국 골퍼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나.

“이번 우승은 매우 특별하다. 같은 세대의 국내 골퍼들이미국으로 와서 PGA투어의 문을 두드리도록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안영식기자 ysahn@donga.com

-앞으로 각오는….

“이제 우승을 해봤으니 또 다른 세상에 뛰어든 셈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이다. 우선 6일 시작되는 바이런넬슨클래식을 비롯해 콜로니얼클래식, 메모리얼대회까지 3주 연속 출전할 계획이다. 올 시즌 메이저대회는 잘 모르겠다. PGA챔피언십은 출전이 가능할 것 같으나 US오픈은 세계 50위 안에 들어야 하니 지켜봐야 한다.”

안영식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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