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설의원 폭로 배후 없는가

  • 입력 2002년 4월 24일 18시 17분


‘이회창 거액수수설’을 폭로한 민주당 설훈 의원이 당초 공개를 약속한 녹음테이프를 내놓지 못하면서 폭로 내용의 출처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테이프를 갖고 있거나 직접 들어보지 않고도 그 같은 엄청난 내용을 폭로했다는 것은 설 의원이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야당은 그 배후로 청와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같은 권력 정보기관을 거론하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그 같은 시각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본다. 설 의원은 처음에만 해도 자신이 테이프를 직접 들은 것처럼 말했고, 증인도 복수로 있다고 말했다. 발언도 면책특권이 없는 당사 기자실을 이용했다.

실제로 선거철이 되면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에는 야당후보와 관련된 온갖 의혹들이 몰려들고 권력 정보기관이 이들 수집에 동원돼 왔다. 사실이 아닌 것도 적지 않지만 권력 측은 이를 야당후보를 무너뜨리는 선거용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더욱이 폭로시점은 김대중 대통령이 아들 문제로 궁지에 몰리고 있어 집권여당으로서 국면 전환이 절실한 때였다.

무엇보다 우리는 설 의원이 김 대통령의 직계 의원으로 분류될 수 있고, 얼마 전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빌라 문제를 터뜨린 사람이라는 데 주목한다. 권력핵심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집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설 의원의 폭로 뒤에 이런 의혹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앞으로 엄청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김 대통령의 정치 불개입 약속이 허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가기관들이 공작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당사자인 설 의원은 녹음테이프 공개 약속시한을 넘긴 이후 왜 아무 말 없이 숨어만 있는가. 그럴수록 상황이 점점 악화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아니면 말고’식의 낡고 무책임한 폭로정치를 근절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도 이번 폭로에 배후가 있었는지 철저한 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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