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중하 릴레이시리즈]세계축구여행<상>퓨전이 강하다

  • 입력 2002년 4월 22일 18시 11분


프랑스 지네딘 지단(왼쪽)이 브라질 수비벽 위로 솟구치며 헤딩슛을 하고 있다.
프랑스 지네딘 지단(왼쪽)이 브라질 수비벽 위로 솟구치며 헤딩슛을 하고 있다.
《흔히 한국축구는 한국인의 강한 개인주의 성향이 플레이 모습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공격수가 유난히 강한 것과 관련, 짧은 기간에 고도 산업화를 이룬 한국 사회의 ‘결과 지상주의’ 풍토와 맥이 닿아 있다고도 한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이 과거 ‘교과서 축구’로 불렸던 것과 비교된다. 각 대륙 각 나라의 축구는 나름대로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 지역 특유의 역사와 문화, 기후가 그라운드 안팎에 녹아 든 결과다. 세계축구의 중심지인 유럽과 남미를 중심으로 그 다채로운 빛깔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상중하 릴레이 시리즈' 연재기사 보기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당시 브라질의 18세 무명 소년 펠레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결승에서 2골을 넣어 조국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긴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훗날 ‘축구 황제’ 칭호를 받은 그는 당시 주위를 둘러싼 스웨덴 금발 소녀들이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만져댔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세계 축구계에 검은색 피부는 신기하고 낯선 풍경이었다.

브라질축구가 이후 70년 멕시코대회까지 월드컵을 세차례나 석권하고 우승컵인 줄리메컵을 영원히 가져간 원동력은 바로 ‘검은 피’였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흑인 특유의 유연성과 순발력, 폭발적인 순간 파워를 ‘삼바 축구’의 이름으로 융합, 축구의 신천지를 개척했다. 지금은 브라질 백인 선수들의 볼터치 감각이나 움직임에서도 검은 피 냄새가 날 정도다.

남미 10개국 중 유일하게 스페인이 아닌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브라질은 원주민 인디오, 포르투갈 이주민, 흑인 노예 이주민 등이 뒤섞인 ‘인종 전시장’이다.

1888년 노예 해방에도 불구하고 축구계에는 유색인종 차별이 뿌리깊었다. 하지만 1910년경부터 흑인 선수 영입에 나선 리우데자네이루의 바스코다가마 축구 클럽이 1923년 1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 바스코다가마는 전체 선수의 절반이 유색인종이었다.

이후 브라질 축구는 대표팀 문호도 흑인 선수에게 개방, 1950년대 이후 반세기에 걸친 화려한 시대를 맞이한다.

브라질축구가 ‘삼바 축구’로 불리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부활절 이전 사순절 축제로 열리는 삼바 축제(카니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유행하던 사육제 엥뜨루두에서 유래했지만 아프리카 심령 신앙이 접목된 독특한 형태로 가톨릭과 흑인 문화가 융합된 ‘퓨전 축제’다. 카니발이 열리는 나흘간 빈부,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혼연일체가 되는 모습은 바로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축소판이고 삼바춤의 현란한 율동은 브라질 축구의 정수다.

20세기 끝 무렵엔 프랑스가 그 배턴을 이어 받았다. 알제리 출신 지네딘 지단을 비롯해 앙리, 튀랑, 윌토르, 드자이, 비에이라 등 ‘검은 피’를 대거 수혈, 일명 ‘아트 사커’로 세계 축구를 제패한 것.

9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럽선수권때 프랑스 우익정당 국민전선의 루펭 당수는 “축구대표팀 선수중 국가 ‘라 마르세이에즈’도 못부르는 자가 많다”고 불평했지만 이들 흑인 대표선수들은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프랑스 국민을 하나로 결속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유럽의 검은 피 수혈은 갈수록 가속도가 붙고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 특급 스트라이커 올리사데베를 귀화시킨 폴란드와 가나 출신 아사모아를 사상 첫 흑인 대표팀 선수로 뽑은 독일은 물론이고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마저 헤스키, 캠벨, 콜 등 흑인 트리오를 앞세워 명가 재건을 꿈꾸고 있다. 스트라이커 음펜자의 발 끝에 희비가 갈리고 있는 벨기에도 마찬가지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