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그때 그이야기]7회 칠레대회<상>

  • 입력 2002년 4월 21일 18시 11분


브라질의 지토가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결승전에서 두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브라질의 지토가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결승전에서 두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제7회 칠레월드컵은 천재(天災)의 아픔을 딛고 개최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인 칠레는 월드컵이 개최되기 2년전인 1960년 5월 국가적인 재난을 맞는다.

휴화산인 오소르노 화산이 폭발한 것. 대지진이 함께 몰려왔고 칠레는 국민 5000여명이 사망하는 국난에 봉착했다. 그러나 칠레 국민들은 2년만에 칠레를 월드컵을 치르기에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재건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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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월드컵에는 한국을 포함한 56개국이 참가 신청을 냈다. 이전까지의 월드컵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숫자였다. 제7회 월드컵부터는 예선에서 대륙간 플레이오프제가 도입됐다. 대륙간 안배보다는 실력이 우선이라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방침에 따른 것이었으나 이 때문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단 한나라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예선 10조에 속한 한국은 인도네시아가 기권해 일본만 이기면 최종 예선에 나갈 수 있게 됐다. 서울과 도쿄에서 차례로 열린 예선 2경기에서 한국은 스트라이커 정순천이 3골을 넣는 맹활약으로 각각 2-1, 2-0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와의 최종 플레이오프에서 2연패하는 바람에 월드컵 진출의 꿈은 무산됐다.

본선에서는 16개국이 4개조로 나뉘어 1차리그를 벌였다. 1조에서는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2조에서는 서독과 칠레가 결승 토너먼트에 올랐다. 특히 2조 경기에서는 홈팀 칠레와 이탈리아가 격투기를 방불케하는 난투극을 벌여 각국 언론으로부터 ‘전쟁’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3조에서는 브라질과 체코슬로바키아, 4조에서는 헝가리와 잉글랜드가 예선을 통과했다.

결승 토너먼트에서 역시 돋보인 팀은 브라질이었다. 펠레가 예선에서 부상을 입어 출전하지 못했지만, 브라질은 가린샤의 활약에 힘입어 잉글랜드와 칠레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칠레는 8강전에서 ‘거미손’ 야신이 이끄는 소련을 누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브라질에는 역부족이었다.

브라질의 결승 상대는 체코슬로바키아. 조직력을 앞세운 ‘수비 축구’의 대명사 체코는 헝가리와 유고를 연파했다. 브라질과 체코는 이미 예선에서 맞붙어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팀들. 때문에 결승전은 더욱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결승전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브라질의 3-1 완승. 브라질은 이 대회에서 ‘축구 황제’ 펠레를 비롯, 가린샤, 바바, 아마릴로, 지토, 자갈로 등을 배출하며 ‘스타 군단’으로 이름을 떨쳤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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