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돈과 텔레비전, 그리고 독일축구

  • 입력 2002년 2월 25일 11시 18분


독일 경제가 요새 좋지 못하다. 연방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독일은 작년 경제성장률이 0.6%로, 1993년 이후 8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요한 할렌 통계청장은 "지난 해 3분기와 4분기에 연속적으로 독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함으로써 경기가 확실히 침체기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경제는 지난 해 2분기에 제로 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는 -0.1%, 4분기에는 -0.5%를 기록했었다. 투자 또한 3.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투자부진이 성장률 하락의 요인이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재정적자도 국내총생산(GDP)의 2.6%에 달해, EU의 재정적자 규제 상한선인 3%선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성장률을 0.6∼0.7%로 예상하고 있으며, 독일 정부도 올해 성장률 목표를 1.25%에서 0.75%로 하향 조정했다. 또한 고용사정 악화로 인해 실업자수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여, 올해 독일 경제는 저성장, 고물가, 고실업의 3중고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현재 유래 없는 스포츠 시장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분데스리가가 다른 메이저 리그들처럼 본격적으로 '돈지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선수수급에 대한 면 만이 아니라, 경기 외적인 분야에서 더욱 더 천문학적인 액수로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 최고의 경제력, 독일이 이제부터 서서히 축구 마케팅에 가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신 구장의 개장 소식이다. 이미 작년 8월에 샬케04는 최신식 돔 경기장인 '아우프 샬케(Auf Schalke)'를 개장했다. 그들의 연고지인 인구 28만 명의 공업도시 겔젠키르헨에 세워진 이 최신식 구장은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이라는 평이며, 개폐식 지붕을 갖춘 최첨단 설비를 자랑한다. 개장행사에는 61,000명의 샬케 홈 팬들이 몰려들어 10여 년에 걸친 경기장의 탄생을 보기위해 북적거렸다. 이 날 제프 블라터 FIFA회장도 참석해, 3억5천800만 마르크를 투입해 건립한 다목적 경기장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강철과 반투명 유리섬유로 만든 이 돔 구장은 접었다 펼 수 있는 천정과 35㎡의 대형 스크린 4개, 예배당 시설 등을 갖췄고 경기장 내에서 전자 결제로 맥주와 소시지를 즐길 수 있도록 되어있다. 샬케는 연 회비 약 14만4천 마르크에 판매한 고액 VIP라운지 72개가 모두 팔렸고, 1천600개의 비지니스석 또한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라면 샬케 구단은 아우프 샬케 구장을 여러모로 활용해 막대한 이익을 남길 수 있으리라 보인다.

또 하나의 경기장 건립 소식이 독일에서 있었다. 바로 작년 10월에, 뮌헨을 연고지로 하는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과 1860뮌헨이, 2006 독일월드컵축구대회 개막식이 열릴 축구 경기장을 새로 건설하기로 합의한 것이었다. 양 구단은 시민 투표까지 한 뒤, 66%의 찬성표를 등에 업고 이 막대한 공사를 시작하였다. 2005년 완공 예정인 이 구장은 약 5억 마르크를 들여 지하철과 연결되는 최신식 스타디움으로 세상에 선보이게 될 것이다. 이 막대한 사업비는 구단에서 부담하고, 지하철 설치 등 기반시설비는 바이에른 주정부로부터 지원 받기로 했다. 프란츠 베켄바워 독일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장 겸 바이에른 뮌헨 구단주는 "두 구단이 이용하는 올림픽 경기장은 축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개막식이 눈에 어른거린다"며 강한 기대를 표명했다. 사실 지금 뮌헨의 두 구단이 홈으로 쓰는 올림피아 스타디움은 `72 뮌헨 올림픽에 맞추어 개장했던 경기장이라 낡긴 했었다.

우리도 일단 2002월드컵을 위해 경기장을 10개나 새로 지었다. 베른트 라만 독일 파더본대 경제학과 교수는 월드컵의 경제적 측면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경기장과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투자

둘째, 대회 기간 관중과 관광객으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

셋째, 월드컵이 끝난 뒤 경기장과 SOC 활용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그는 사후 활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만 교수는 "국가적 지명도 향상과 관광산업 효과는 엄청나지만 수치화하기 힘들다. 10개씩 경기장을 새로 준비하느라 무리를 한 한국과 일본은 프로 팀의 창설, 국제 대회의 유치, 콘서트, 집회 등 다양한 경기장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우리로서는 대망의 월드컵이 다가온 이상 독일과 분데스리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스포츠 마케팅적인 수익성을 간과할 수 없는 실정이다.

라만 교수의 제안대로 우리는 어서 사후 활용 방안을 모색해서 경기장 만드는 데 들었던 비용을 뽑아내고 흑자 운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축구협회에서 내놓는 청사진들은 허탈한 가공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 너무 추상적인 단계라, 월드컵 뒤에 흉물스럽게 남게 될 지도 모를 10개의 경기장이 걱정된다. 한 경기장에서 일년에 한 번의 A매치를 갖는다는 것도 힘든데, 무슨 수로 그 경기장들을 사용할 지에 대해서는 좀 더 냉정한 숙고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의 스포츠마케팅 소식이 또 하나 있다. 지난 연말로 12년 동안 굳건한 전략적 제휴관계를 유지해 왔던 독일 OPEL사와의 스폰서 계약이 만료됐음을 발표하자 기다렸다는 듯 많은 기업들이 뮌헨과의 계약을 타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의 계약에서 0순위를 달리고 있는 기업은 독일의 세계적인 보험회사 알리안츠이다. 이미 뮌헨은 지난 1월 1일, 새로 건설할 홈 구장 이름을 '알리안츠 구장' 또는 '알리안츠 돔'으로 명명해주는 대가로 알리안츠사로부터 15년 동안 1억8000만 마르크를 받는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외에 독일의 빌트지는 최적의 후보사로 도이체포스트를 언급하기도 하면서 이 초유의 거래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밖에 BMW, 지멘스, 코카콜라 등 다국적 거대 기업들도 이 계약에 이미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자동차 회사인 OPEL사의 마크가 가슴에 새겨져 있는 바이에른 뮌헨의 유니폼은 조만간 바뀔 예정이다. 결국 높은 브랜드 가치를 마케팅에 이용하려는 기업의 전략과 구단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추세인 것이다. 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펼쳐지고 있는 셈인데, 용품 후원업체와의 계약조차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 국내 구단으로선 마냥 부러울 수 밖에 없는 먼 나라 이야기다.

독일에서의 마케팅 가운데 또 하나의 큰 시장이 있다. 바로 TV중계권에 대한 부담금인데, 전통적으로 월드컵 경기를 방영해왔던 ARD와 ZDF 등 독일 공영방송은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 중계를 위해 2억5천만 마르크의 중계료를 전액 지불키로 합의를 보았다. ARD는 작년 3월, 국제축구연맹(FIFA) 중계권 판매 대행사이자 독일 내 월드컵 중계권 보유 회사인 독일의 미디어 그룹 키르히에 한일 월드컵축구 25경기의 중계권료로 당초 요구한 2억5천만 마르크를 전액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2002년 및 2006년 월드컵축구의 독일 내 텔레비전 중계권 계약은 커다란 난항에 부딪혀 있었다. 키르히에서는 2002년 대회 중계권료로 2억5000만 마르크를 요구했으나, 두 방송사는 2006년 대회 중계권까지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었다. 키르히측은 "2006년 월드컵에서의 텔레비전 부문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패키지 계약을 하자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고, 이에 두 공영방송측은 "키르히측이 애초 합의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서로를 비난했던 것이다. 따라서 협상 결렬에 따라 독일 팬들은 RTL 또는 SAT.1 등 민영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24경기 외에 2002 월드컵 40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키르히 소유의 유료채널에 가입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2주 뒤, 키르히는 공영방송인 ARD, ZDF와 2002년 한일월드컵 및 2006년 독일월드컵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키르히에서는 구체적인 중계권료는 밝히지 않았다. 키르히 그룹은, 지난 10월에는 영국 BBC 및 ITV와 2개 월드컵에 대해 2억2천400만 달러에 계약한 바 있다.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인 TF1과도 지난 11월에 1억4천750만 달러에 내년 월드컵의 프랑스 지역 독점 중계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는 2006 독일 월드컵축구대회 준결승과 결승전을 포함, 24경기를 방영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2006 대회를 모두 중계할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옵션도 포함됐다고 TF1는 설명했다. 이 때에도 공동 협상을 벌였던 TF1과 국영텔레비전은, 키르히측이 중계권료를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며 최악의 경우 프랑스대표팀 경기를 제외한 다른 경기를 중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이에 프랑스 정부도 FIFA에 중재를 요청하는 등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 결국 TF1은 2002월드컵을 유료TV 자회사인 '유로스포츠'를 통해 방영하고, 개막경기와 결승전은 본 채널을 통해 내보낼 계획이다. 키르히의 입장이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2002월드컵과 2006월드컵의 전세계 방영권을 위해 국제축구연맹에 20억 달러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돈독 오른 국제축구연맹의 장난이 축구를 '돈 잔치판'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독일의 거대 자본이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이 지금 유럽의 현실이다. 사실 20억 달러의 중계빵을 댈 수 있는 기업이 유럽엔 독일 말고는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TV가 만드는 또 하나의 시비 꺼리는 분데스리가의 시청시간대 편성이다. 이 문제 또한 텔레비전 중계권자인 키르히의 축구 프로그램 편성시간 변경이 부른 일이었다. 시간을 변경하자 시청률이 폭락했던 것이다. 독일 축구의 한 고위 관계자는 "키르히 그룹이 토요일 프라임타임에 방영되던 축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편성 시간을 늦추면서 시청률이 급락, 축구 인기를 위협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키르히는 유료 채널 시청자 확대를 위해, 오후 6시 무료채널에서 방영하던 분데스리가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RAN'의 편성시간을 2시간 늦추고, 같은 시간대 유료 채널에서 경기를 중계했었다. 그러나 방송 시간 변경 후 2주간 평균 1천만 명이던 RAN 고정 시청자 수가 205만 명으로 뚝 떨어졌다. 이에 따라 방송 중계권료에 운영비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클럽들 사이에 축구인기 하락에 대한 불안과 함께 중계권자 변경 필요설까지 제기되었던 것이다. 당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게르트 니바움 구단주는 "남성이 대부분인 축구 프로그램 시청자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지 못한 편성 변경이 축구 열기를 식히고 있다"고 말하면서 돈밖에 모르는 키르히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었다. 그리고 결국엔 키르히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시청률이 폭락했던 RAN의 방송시간을 토요일 늦은 7시로 변경한 것이다. 불과 한 달 전에 RAN의 방송시간을 늦은 8시로 2시간 늦췄던 그룹은 분데스리가 클럽들의 강도 높은 비난 때문에 다시 황금시간대에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이다. 베르너 해크만 분데스리가 회장은 "축구팬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방송시간을 재조정한 만큼 시청률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키르히 사태의 종결을 선포했다.

TV가 분데스리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즘의 일들은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들과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그렇게 관대하지 못하다. 얼마 전, 독일의 민영 TV인 RTL과 SATL은 축구경기가 중계료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좀 더 많은 광고를 내보내기 위해선 타임아웃제나 쿼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었다. 축구에도 농구처럼 타임아웃제나 쿼터제를 도입하자는 일부 TV방송국의 제안에 대해 프란츠 베켄바워는 "머리에 구멍을 내자는 것", "세기의 넌센스"라는 등 혹평으로 일축했다. 베켄바워는 '빌트 데일리'지 기고문에서 "축구는 스피드의 경기"라고 전제하며, 흐름을 끊음으로써 축구 자체의 묘미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돈 벌레들에게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유럽 최고의 독일 경제력이 본격적으로 축구판의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다. 축구 팬들은 눈에 보이는 보도들만으로 다른 세 리그가 마케팅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더욱 활기차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분데스리가의 이런 뭉칫돈 놀음은 유럽의 축구판도를 쥐려는 독일 자본의 장기적인 포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돈 많은 독일 놈들이 맘만 까딱 잘못 먹으면, 우리같이 없이 사는 놈들은 실시간 생중계로 방영되는 유럽축구를 볼 수 없는 날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이 기우에 그치길 바라며 16번째 칼럼을 마친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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