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9·11 테러를 겪었으니 그럴 만하다. 워싱턴DC 경찰이 공공건물에 수백대의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통행자들의 행동을 감시하려는 계획도 미국인의 테러 노이로제를 실감케 한다. 경찰, 연방수사국(FBI) 등 각종 수사 및 보안기관이 총출동해 ‘공동 작전센터’를 만들고 민간기업의 감시용 비디오 화면까지 제출받아 분석할 계획이라고 하니 워싱턴 시민이 카메라 렌즈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경찰은 “테러와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감시 카메라 사용을 확대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사생활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으나 이미 전 세계를 감시하고 있는 미국 정부가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각국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위성통신감청망인 에셜론을 통해 세계 각국의 전화통화 팩스 e메일 등을 시간당 최고 수십억건씩 감청하고 있다. 1948년 공산국가를 상대로 한 군사정보 수집용으로 창설된 에셜론은 현재는 외국기업의 활동 탐지에 주력하고 있어 타국에 미치는 피해가 크다. 영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던컨 캠벨은 미국의 보잉사가 95년 60억달러어치의 항공기 수주를 유럽 에어버스사로부터 넘겨받은 것도 에셜론 덕분이었다고 폭로했다.
▷미국보다 한발 앞선 나라도 있다. 영국은 이미 전국에 200만대의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국민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비하면 절도를 막기 위해 탈의실과 수면실에 폐쇄회로TV를 설치하는 우리나라 목욕탕 업주들의 감시 전략은 어린애 수준이다. 끔찍한 일이지만 곳곳에 설치된 몰래 카메라에 찍힌 일거수일투족이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영화 ‘트루먼 쇼’가 차츰차츰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빅 브러더’가 감시 카메라로 인민을 24시간 감시하는 조지 오웰의 ‘1984년’이 결코 소설만은 아닌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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