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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16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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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초부터 그랬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직후 “벤처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며 몇 년 내에 몇만 개의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비(非) 벤처적’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정책의 길은 잘못 들어서기 시작했다. 성공률이 5%도 안 된다는 벤처산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정부가 전체를 다 살릴 것처럼 직접 지원에 나서면서 우리나라의 벤처는 더 이상 벤처이질 못했던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의 또 다른 동력원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정부가 벤처 육성에 나설 수는 있겠지만 그 후 취해진 일련의 정책은 오히려 벤처산업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었다.
벤처인증 제도를 도입해 정부가 벤처기업의 장래성을 판별하는 권한을 가진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심사결과에 따라 각종 공공기금을 인심 좋게 퍼부은 것도 벤처산업을 왜곡시키고 업계를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한 일이었다. 밤을 새워 기술을 개발하는 ‘순수 벤처’보다 줄 잘 서고 권력 동원에 능한 기업에 더 많은 자금이 더 쉽게 흘러들어 가면서 세상은 온통 ‘정치 벤처’판이 된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과다개입과 과보호로 국내 벤처산업에서 시장경제 논리는 사라지고 거품에 싸인 벤처붐만 일어나면서 악(惡)의 먹이사슬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침내 최근의 각종 추악한 게이트로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어제 다시 벤처기업의 ‘옥석 가리기’에 나서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또 한번의 실책을 예고하고 있다. 벤처기업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부실, 사이비 벤처를 솎아내겠다는 발상은 기업의 생사 여탈권이 여전히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줌으로써 부패 발생의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벤처기업의 옥석은 시장에서 투자가들이 가릴 일이지 정부가 무 자르듯 할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낭비적인 부작용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벤처를 육성하고 지원해야 하는 정부의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과거의 실책을 교훈 삼아 결코 직접적인 권한행사 위주로 정책방향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벤처인들이 흥이 나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기술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주변여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사이비 벤처가 걱정되면 코스닥 등록기준을 더 엄격하게 해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시장의 감시기능을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정부의 벤처 관련 실정은 그 정도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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