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언론개혁' 1년, 무엇을 남겼나

  • 입력 2002년 1월 15일 18시 46분


이른바 ‘언론개혁’ 1년을 맞는 우리의 소회는 참으로 착잡하다. 이를 주도했던 인사들이 잇따라 부정비리사건에 연루돼 자리를 떠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개혁 강조가 얼마나 허구에 찬 것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언론개혁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지난해 이맘 때 연두회견에서였다. 이를 신호탄으로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신문고시 부활 작업도 이루어졌다. 대규모 조사인력을 투입해 언론인 계좌까지 무차별적으로 뒤지는 유례 없는 고강도 조사였다. 세무조사 결과를 넘겨받은 검찰은 마침내 3개 언론사 대주주를 구속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국세청 검찰의 고위관리들은 연일 조세정의니 정당한 법집행이니 하며 언론사 조사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모습은 어떤가. 당시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으로 조사의 정당성을 홍보했던 박준영(朴晙瑩)씨는 윤태식 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고, 국세청장으로 세무조사를 진두지휘했던 안정남(安正男)씨는 치부(致富) 의혹으로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다. 언론사 수사를 지휘했던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은 동생이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총장직에서 낙마했다. 이들이 누구보다 앞장서 개혁을 외쳐댔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정권이 그토록 강조해 온 ‘언론개혁’ 작업이 우리 사회와 국가에 남긴 성과는 무엇인가. 성과는커녕 사회 전체에 불신과 반목만을 불러왔을 뿐이다. 국민과 국민, 정권과 언론, 언론과 언론이 서로 맞서고 갈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국론분열 상황이 전개됐고 지금도 곳곳에 그 상처가 남아 있다. 김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작용도 했다.

아직 언론사와 대주주에 대한 재판은 끝나지 않았지만 권력의 언론장악 기도는 실패로 끝났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국민도 이제는 ‘언론개혁’ 작업이 정치적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인, 정의와 적법을 가장한 언론탄압이었음을 안다.

권력이 물리적 힘이라면 언론은 말의 힘이고 이것은 곧 독자의 공감이다. 이 같은 독자의 공감이 개혁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권력은 이를 무시했다.

어떤 경우도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인 자유언론에 대한 파괴·음모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이는 ‘언론개혁’ 1년을 맞으면서 권력 측이 되새겨야 할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1년의 혹독한 시련을 거울삼아 정도언론의 자세를 더욱 가다듬을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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