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조폭은 이제 그만

  • 입력 2002년 1월 2일 12시 03분


지난 2001년의 화제 중 하나는 한국영화의 부흥이었다. 대박을 터뜨린 한국영화들이 즐겨 다룬 소재는 '조폭'이었는데, 흥행순위 상위 5위 이내에 든 영화들인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등이 모두 조직폭력배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반기면서도 이렇듯 조폭에 의해 '접수' 당한 한국영화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폭이 한국영화를 접수한 것이 '픽션' 이라면, 다른 한편에선 놀라운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단행된 대한야구협회 임원 인사에서 고익동 회장은 이사회에서 전권을 위임받았다면서 박 모씨를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박씨는 강원도 속초에서 주류 도매업을 하면서 속초상고 야구부를 지원한 바 있는 사람. '주류도매'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속초상고는 97년 12월 창단한 신생팀이지만 2000년 대통령배 8강 등 돌풍을 일으킨 바 있었는데 박씨는 속초상고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대문구장 주변에 건장한 어깨들은 물론 유흥업소에 출연하는 외국 여성들까지 거느리고 다녀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고 회장은 고유권한으로 박씨를 부회장으로 임명하려다가 엄청난 반발을 맞고 있는 것이다. 박씨에 대한 자격시비에 대해 고 회장은 "그 사람이 옛날에는 비정상적인 조직에 몸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개과천선했고 합법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 협회에 3억 원에 이르는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고 선임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면 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대한야구협회는 1997년 정몽윤 회장체제로 출범해 2000년 말까지 유지되어 왔다. 재벌총수지만 사회인 야구 현대화재해상 선수로 직접 뛸 정도로 야구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정 회장은 임기 중 어려운 협회 재정에 큰 도움을 준 것은 물론 프로와 아마의 교류에 앞장섰다.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현지에서 직접 궂은 일을 도맡는 등 열정을 보여줬고 그런 열의는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99년 아시아선수권우승, 2000년 세계청소년대회우승 등 값진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 회장에 대한 일부 야구인의 시각은 싸늘하기만 했다. 프로와의 적극적인 교류를 '아마야구 죽이기'로 매도했고, 진학비리 등이 터졌을 때 원칙대로 처리한 정 회장이 미워, 심지어 국제대회에서의 선전도 정회장의 '욕심'으로 깎아 내리기까지 했다. 정회장의 연임을 반대했던 야구인들이 한결같이 주장했던 것이 "협회는 야구인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결국 그들의 소원대로 2001년 1월 18일 고익동 직무대행체제가 출범했다.

고익동 (당시)대행은 취임직후 "스포츠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후임 회장으로) 몇 분과 접촉해 봤는데 시기가 늦어 영입에 실패했다.그러나 나를 비롯해 협회 이사들이 백방으로 뛰고 있다.김운용 체육회장과 협회 고문인 김종량 한양대 총장에게도 회장을 구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해 놓은 상태다."고 밝힌 바 있으나 결국 심판들의 축승금 파문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도 작년 10월 25일 2003년 1월까지의 임기로 정식 회장에 인준 되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현재 대한야구협회에는 돈이 없다. 그 때문에 작년 초 대표선수들의 태국 전지훈련도 대폭 축소되었고 지난 78년부터 매년 거행되었던 한미 대학야구도 올해는 열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몽윤 회장 시절 적립되어 이월된 2억 여원의 예산으로 버텼던 작년과는 달라 더욱 어려움이 예상되는 올해 3억원의 재정지원은 더없이 반가운 소식일 것이고 누구이던 일단 부회장에 앉히고 보자는 심산일 것이다. 그러나 대한야구협회는 학생야구를 주관하는 단체이다. 무엇보다도 페어플레이와 학생다움을 가르쳐야 할 협회에서, 급하다고 어깨들이 주는 돈이나 받아서야 되겠는가. 조폭은 영화속에서 만으로도 충분하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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