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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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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그 넓은 곳에 무궁화만 있는데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한번은 어느 유학생 부부에게서 “하버드대 정문 앞 번화가에 꽃집이 두 곳 있는데, 이들이 모두 ‘대표 화초’로 무궁화를 전시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때는 부부와 함께 꽃집에 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사진도 찍었다.
보스턴에 갈 때 가끔 머무는 하야트호텔은 서울로 치면 한강 격인 찰스 강가에 있다. 그 18층에 있는 레스토랑은 그곳에서 유일한 회전식당이다. 그 식당의 경치 좋은 곳에 놓인 커다란 화분도 무궁화였다. 반갑고 놀라워서 일부러 다음날 낮에 가서 종업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이런 일들은 무궁화에 대한 관심을 무척이나 깊어지게 했다.
어느 날 저녁 하버드대 정문 앞의 단골 책방에서 식물에 관한 책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매니저란 분이 그 이유를 물어 “무궁화에 관해 알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반가워하면서 자신이 제일 좋아해서 집에서 기르는 꽃이 바로 하이비스커스, 곧 무궁화라고 했다. 그리고는 무궁화는 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화분에 키울 수도 있고, 울타리를 만들 수도 있으며, 그리스에서처럼 가로수로 기를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무궁화는 몇 달간 계속 꽃을 피운다”면서 평소 손님들에게 하던 대로 밝게 웃었다. 나는 그에게 “무궁화는 항상 꽃을 피우고 당신은 항상 웃는군요”라고 답했다. 그곳에서 산 사이먼 슈스터사의 ‘식물과 꽃’이란 책은 무궁화에 대해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무궁화의 영어 이름)’는 1731년 동아시아에서 유럽에 전파됐다고 적고 있었다.
독일에서도 무궁화는 눈길을 끌었다. 베를린의 독일개발연구원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무궁화가 눈에 띄었다. 원장의 비서가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이때는 무궁화에 대한 관심이 막 싹트기 시작한 터라 무궁화 이야기부터 하고 화분을 들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오래 전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장이었던 필리핀 코리히도 섬에 갔을 때 본 무궁화는 정말 싱그러웠다.
한국에는 무궁화 전문가들이 많고 세계적인 무궁화 연구기관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경구 성균관대 교수의 연구소는 많은 신품종을 개발해 냈다. 틈나는 대로 방문했던 몇몇 무궁화농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무궁화가 있었고 꽃들도 참으로 예뻤다. 그 중 제일 좋아 보이는 것을 골라 지난해 서울대에 옮겨 심었다.
무궁화는 종류도 많고 꽃도 아름답고 용도도 다양한데, 왜 많은 한국인들이 무궁화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것을 무궁화 전문가인 김기선 서울대 교수께 여쭈어 보았더니 “옛날 일본인들이 수십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아름다운 무궁화나무는 모조리 골라서 베어내고, 벌레 먹고 보기 싫은 것만 골라서 남겨두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다행히도 아름다운 무궁화가 많이 복원되어 국내에 있는 무궁화의 종류만 200여 가지가 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계속 여러 색깔과 모양의 꽃을 피울 뿐만 아니라 분재, 울타리, 가로수 등으로 다양하게 쓸 수 있는 무궁화야말로 글로벌 지식기반 시대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잘 맞는 좋은 꽃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꽃들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좋아하는 모양과 색깔의 꽃을 고를 수 있고, 용도도 다양한 무궁화야말로 장점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세계 지식인들이 그렇게 무궁화를 좋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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