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손발없이 출범하는 인권위

  • 입력 2001년 11월 22일 18시 36분


26일 출범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위원 11명 외에 직원은 한 명도 없어 적어도 한달 이상 파행 운영을 면치 못하리라고 한다. ‘인권 국가’를 강조해온 이 정부가 공들여 만든 인권위가 문을 열자마자 손발이 없어 사실상 ‘개점 휴업’을 해야 하는 격이다. 상황이 이렇듯 볼썽사납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규모에 대한 인권위측과 행정자치부의 견해차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인권위측은 최소 320명은 돼야 한다는 데 반해 행자부는 120명 이상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4월30일 국회를 통과한 국가인권위법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및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인권 교육과 홍보 등 인권과 관련된 광범위한 활동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인권위측은 그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권위는 독립적인 국가기구인데 행자부가 이를 하나의 정부 부처와 같이 인식하고 무조건 직원 수를 줄이려 하는 게 아니냐고 반발한다.

이에 대해 행자부측은 인권위가 처음부터 너무 크게 일을 벌이려 한다며 곱지 않은 눈길이다. 인권위측의 요구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부 방침에 맞지 않으며, 이를 수용했을 경우 다른 정부 부처에서 인원을 늘려달라고 할 때 거절할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의미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었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인권위측 주장과 아무리 독립적 국가기구라 해도 공무원 조직인 만큼 다른 부처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행자부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렇게 맞서느냐는 것이다. 인권위원의 국회 선출이 늦어져 조직 구성에 대한 의견 조율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권위가 인원 문제로 출범부터 파행을 맞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인권위 출범의 의의는 희석되고 국정운영의 난맥상만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권위측은 법무부 보건복지부 여성부 경찰 등과 중복될 수 있는 업무를 최대한 조정하고, 행자부측은 인권위의 특수성을 인정해 가능한 한 인력 지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며 인권위의 위상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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