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에콰도르 2,850m의 승리

  • 입력 2001년 11월 15일 13시 41분


적도의 지배자 에콰도르 - 인구 1200만, 수도 키토(Quito, 해발 2,850m)

남미에는 지역적인 특성이 한 국가의 나라 이름이 된 경우가 몇 가지 있다. 코스타리카(Costa Rica)는 스페인어로 ‘해변이 아름답다’는 뜻이고(코스타리카의 해변은 천혜의 절경을 지니고 있다.) 에쿠아도르(Ecuador)는 영어로는 equator(적도)라는 뜻이다.

아마존과 ‘엘 니뇨(el niño)’, 갈라파고스 제도의 나라. 적도의 지배자 에콰도르가 드디어 월드컵 백년 사에서 최초로 본선 무대에 등장을 한다.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장비와 인프라가 없어서 다른 스포츠는 거의 말살되다 시피한 남미 축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숨 한번 쉬지 못하던 에콰도르가 ‘사모라노와 살라스’의 나라 칠레나 펠레가 극찬을 아끼지 않는 남미의 축구 강호 ‘콜롬비아’ 같은 나라를 늪으로 빠뜨리며, 당당하게 2년 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승리의 깃발을 나부끼며 Copa Mundial, World Cup Final로 올라 섰다.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선수 한 명 보유하지 못한 에쿠아도르의 월드컵 남미 예선 통과는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역시 축구는 ‘이름 값’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준 장정이었다. 사람들은 에콰도르의 성공을 수도 ‘Quito(키토)’의 승리라고들 한다. 2,850M의 고지에 익숙한 에콰도르 선수들이 홈의 이점을 발판 삼아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에콰도르가 대 아르헨티나 전을 제외하고는 예선에서 홈 불패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원정에서도 이겨야 할 게임에서는 확실히 승리를 챙겼다. 이것이 예전의 최약체 에콰도르와 달라진 모습이었다.

에콰도르는 이번 예선전에서 1942년 최초의 국가 대항전을 벌인 이후 단 한 번도 이겨 본적이 없었던(2무 18패) 브라질을 꺾었다. 붙었다 하면 서너 골 먹는 것은 기본이었던 브라질이었기에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비기는 것만으로 그들은 행복할 수 있었지만, 2001년 3월 28일 카비에데스(Valladolid, Spa)의 한 방은 에콰도르 축구 역사의 가장 기념비 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아기나가, 델가도, 카비에데스, 멘데스… 에콰도르의 선수들은 마치 브라질 선수들처럼 겁 없는 플레이를 펼쳤으며, 이들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남미 예선 동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브라질이었지만 에콰도르의 승리는 남아메리카를 넘어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으며, 남미 예선 최대의 이변으로 기록되며 결국 에콰도르의 월드컵 결선 진출을 이끌어 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승리의 땅, 키토(Quito)

키토(2,850m)는 월드컵 예선전이 벌어진 도시 가운데 콜롬비아의 보고타(2,611m), 볼리비아의 라 파스(해발 3,693m)와 함께 가장 고도가 높은 도시 중의 하나이다. 중미의 멕시코시티(2,268m)를 포함해도 볼리비아의 ‘라 파스’에 이어 2번째로 고도가 높은 도시가 된다. 에콰도르는 98월드컵 예선 때만 해도 국가 제2의 도시인 항구 도시 ‘과야킬’에서도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철저하게 수도 키토의 ‘올림피코 아타우알파’ 스타디움에서 진행했다. 고지의 유리함을 철저하게 이용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이는데, 결국 2,850m 고지의 이점은 에콰도르 최초의 월드컵 진출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역대 공식 A매치 기록을 살펴보면, 과야킬에서 16승 16무 19패, 키토에서 26승 11무 9패를 기록했는데, 키토의 고지가 에콰도르의 승리에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 알 수가 있다. 90년대 이후의 기록을 보면 키토는 승리를 보장해 주었던 땅임이 더욱 자명해 진다. 91년부터 에콰도르는 수도 키토에서 벌어진 25게임 중 단 3패만을 기록했다(19승 3무 3패). 이 승리 중에는 96년 파사레야 감독(파르마, Ita)이 이끌던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2대0으로 이긴 것이 포함되어 있다(90년대 에콰도르의 국가 대표팀 공식 경기 총 121게임, 45승 31무 45패, 과야킬 13승 10무 9패 / 원정 경기 14승 18무 33패). 고지의 부족한 산소가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은 급격한 체력 저하 및 움직임의 저하로 나타나는 데, 축구의 승패를 좌우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참고로 안데스 산맥에 거주하는 인디오들이 해안가로 이주했을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죽어간 기록들이 남미에는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고지가 홈팀에게 유리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분명한 또 하나의 사실은 단순히 고지의 유리함만으로는 경기에 이길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경기에 이기려면 골을 넣어야 하고,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월드컵에 나가려면 원정 경기에서도 승점을 쌓아야만 한다. 팀이 강해야만 고지의 유리함을 등에 업고 월드컵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98년 월드컵 예선 이후 국제 경기에서 지기만 하던 에콰도르를 월드컵으로 견인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짜임새 있고 강한 팀을 만들어낸 감독이었다.

에콰도르의 영웅, 콜롬비아인 고메스(Herna Dario Gomez)

에콰도르는 2002 월드컵 예선에 대비하기 위하여 콜럼비아 출신의 고메스를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한다. 고메스는 98년 이후 국제 경기에서 단 1승 밖에 거두지 못하고 있던 에콰도르 대표팀의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게 되고, 결국 월드컵 진출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에콰도르에 안겨 주는데 1등 공신이 되었지만, 그의 행보도 결코 쉽지 만은 않았다. 남미 축구의 후진국 에콰도르는 선수의 발탁에도 정치적인 영향력이 미치는 등 커다란 병폐를 안고 있었다. 전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대표팀에 뽑히고, 감독을 우습게 보고 팀 결속력을 해치는 해악 같은 선수들이 대표팀에 존재하는 이상 에콰도르가 월드컵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메스 감독이 대표팀을 맡으면서부터 이러한 요소들이 제거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팀을 이길 수 있는 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축구 외적인 요소들이 대표팀에서 제거되어야만 했다. 그는 실력 위주로 선수들을 뽑고 관리하기 시작했으며, 팀을 정비해 나갔다. 고메스의 대표팀은 강해지고 있었다. 예선전이 진행될수록 선수들이 가진 능력들이 극대화되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한 선수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한 감독 테러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전 대통령(부카람)의 아들이 자신을 20세 이하 대표팀에 뽑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독을 집단 구타하고 총까지 발사하는 엄청난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린치 사건으로 고메스 감독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더 이상 에콰도르의 감독직을 수행하지 못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며 팀을 떠난다. 호텔 바에서 쉬고 있는 감독에게 집단 구타와 총으로 위협을 해대는 나라에서는 그 어떤 감독도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팀을 이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에콰도르 국민들과 축구인들에게 최초로 브라질을 꺾은 감독이었던 그는 영웅이었다. 고메스가 떠난 팀이 연습 경기에서 저조한 플레이를 보이자 에콰도르인들은 오직 그만이 그들의 나라를 월드컵 본선에 진출 시킬 수 있는 감독이라고 더욱 확신했다. 그리고 고메스에게 돌아와 달라고 외쳤다. 그들은 거리로 뛰쳐 나와 고메스의 복귀를 위해 시위하기 시작했다. 아기나가와 델가도 등 팀의 핵심적인 선수들도 출장 거부를 통해 합세하기 시작했다. 고메스는 얼굴에 붕대를 감고서 팀에 복귀했고, 다시금 승리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에콰도르의 월드컵 진출은 고메스라는 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그가 팀을 맡은 이후로 에콰도르는 달라졌다. 그리고 협회나 선수, 국민들 모두 이것을 인정한다. 추락을 거듭하던 잉글랜드가 에릭손의 손을 거쳐 강력한 힘을 보여 주었듯이 에콰도르는 고메스의 손에 의해 새롭고 힘있는 팀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이 고메스 감독을 제외한 에콰도르 대표팀을 상상할 수 없는 이유이다.

Squad

에콰도르 전력의 핵심은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그들의 해외 진출이라고 해봤자 멕시코 리그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번 예선전을 통해 아마도 더욱 많은 유러리거를 배출하게 될 것이 확실시 된다.

예선을 통해 본 에콰도르 수비라인은 우르타도, 델라크루스를 축으로 움직인다. 우르타도와 델라크루스는 센터백과 라이트백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중앙의 나머지 한 자리는 포로소와 에스피노사가 번갈아 기용되고 있다. 그러나 예선 후반 중앙 수비의 한 자리는 에스피노사가 주전을 차지했고 레프트 백은 게론, 수비형 미들필더로는 레프트 백으로 기용되고 하던 오브레곤이 고정되어 아기나가, 델가도, 카비에데스의 공격진과 조직력을 갖추었다.

다음은 에콰도르 팀에서 주목해야만 할 선수들이다

울리세스 델라 크루스(Ulises de la cruz, 74년생, 스코틀랜드 Hibernian)

우르타도와 함께 대표팀 수비라인의 핵심 역할을 하는 선수 부동의 라이트 백. 대인 마크에 뛰어날 뿐 아니라 측면에서 올려 주는 센터링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선수로 크루세이로(Bra)를 거쳐 01/02 시즌 스코틀랜드 Hibernian에서 활약 중이다.

알렉스 아기나가(Alex Aguinaga, 68년생, 멕시코 necaxa)

팀의 주장으로 게임메이커.

최근 체력적인 부담으로 인해 ‘찰라’가 스타팅으로 뛰고 후반 교체 투입되는 경우가 많지만, 개인기가 뛰어나고 탁월한 패스 능력을 지닌 팀의 핵심 멤버로 에콰도르를 대표하는 선수 중의 하나다.

본선 진출을 결정지었던 우루과이 전에서 부진한 찰라와 교체 투입, 카비에데스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한 주인공으로 에콰도르 팀의 정신적인 기둥 역할을 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틴 델가도(Augustin Delgado, 74년생 멕시코 necaxa)

187 cm, 83kg 양발을 모두 사용하고 헤딩력, 돌파력과 파괴력을 모두 갖춘 에콰도르의 간판 스트라이커.

에콰도르 전력의 핵심 중의 핵심. 남미 예선을 9골을 기록해 호마리우와 크레스포(이상 10골)에 이어 득점 3위에 랭크. 예선을 통해 파괴력 있는 스트라이커로 인정을 받아 멕시코, 잉글랜드 사우스햄튼 등 유럽팀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선수다. 에콰도르와 맞붙게 되는 팀이 가장 경계해야할 선수가 바로 아우쿠스틴 델가도이다.

이반 카비에데스(Ivan Kaviedes, 77년생, 스페인 Valladolid)

에콰도르의 인터네셔널 플레이어, 이탈리아 페루자, 스페인의 셀타비고,바야돌리드에서 활약. 예선 동안 3골을 기록했으나 이 중 두 골이 브라질 전의 결승골, 우루과이 전의 본선 진출을 결정짓는 동점골.

아직 칠레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가 남아 있지만, 예선전의 성적에서 알 수 있듯이, 에콰도르는 홈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그 어떤 팀에게도 흔들리지 않았고(6승 2무 1패) 원정 경기에서도 약팀에게는 철저하게 승을 챙기며 본선에 진출했다(베네수엘라 2승, 볼리비아 2승, 페루 2승, 칠레 1승) 그들의 성과를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은 키토의 고지가 그들에게 월드컵 진출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안정된 전력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얻어낼 수 없는 성과인 것은 분명하다.

남미 예선 돌풍의 핵이었던 에콰도르 과연 월드컵 본선에서도 돌풍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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