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동욱/출자제한 경쟁력 묶는다

  • 입력 2001년 11월 13일 18시 33분


대기업그룹의 출자(투자) 한도를 계속 두느냐, 폐지하느냐는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다.

또 현재 내국인은 은행주식을 4%까지만 가질 수 있다. 주식 소유는 외국인과 같이 10%까지 허용할 방침이지만 의결권을 4%까지만 행사하도록 제한하느냐 마느냐가 열띤 논란거리다.

투자한도의 존폐문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시장경제가 강조됐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지금 아옹다옹 입씨름을 하는 것이 이상스러워 보인다. 물론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수용이라는 국가적 수모는 재벌들의 무절제한 투자행태에도 원인이 있다. 무분별한 투자를 막으려면 ‘투자한도’라는 굴레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재벌들이 과거 무절제한 투자를 자행했던 것은 채무비율이 적정선(자기자본의 200%)을 훨씬 넘는 500% 수준의 과잉부채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룹 산하 기업들간의 상호채무보증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룹산하 기업들간의 불공정한 내부자거래를 눈감아 주었기 때문이며 계열기업들간에 투명한 연계 재무제표를 챙기지 않는 등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도 재벌기업들이 늘고만 있으니까 출자제한을 존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현재 재벌 산하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은 과거와 같은 ‘절도 없는 마구잡이 투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각종 규제 하에서도 기업이윤을 창출했거나 신규주식을 발행해 정당한 방법으로 마련한 자본에 의한 것이다. 그룹의 자기자본 총액이 늘고 계열기업이 ‘문어발식’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보인다고 해도 이는 국민경제발전에 기여한 것이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일이다.

내국인의 은행주식소유한도(4%)를 외국인의 한도(10%)와 같이 올려주되 의결권 행사한도는 4%로 묶어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는 시장경제(재산권)의 기초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10%의 주식’을 소유한다는 것은 ‘10%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하는 것을 뜻한다. 즉 의결권 한도는 임의로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IMF 관리체제 이전 경제적 국경이 한국경제를 감싸고 있던 때에는 은행들이 국내재벌에 의해 좌지우지될 위험성도 있었으므로 4% 이상 은행주 소유를 금지한 것이 명분이 있다. 현재는 경제적 국경이 걷힌 무한경쟁시대다. 외국인과 같은 의결권을 내국인에게 부여한다고 해서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私金庫)화되지 않겠느냐는 것은 기우에 불과한 짧은 생각이다.

세계 최고 기업이라는 제너럴일렉트릭(GE)도 200여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으며 GE캐피털은 GE보다 수익을 많이 내고 있다. 물론 가족·족벌의 재벌지배구조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은 데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GE도 초창기엔 에디슨 가족들이 지배했다는 사실은 한국재벌의 현주소를 생각하는 이 시점에서 참고로 삼을 만한 대목일 것이다.

이 동 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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