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사생결단의 시험’

  • 입력 2001년 11월 8일 18시 18분


우리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마도 출신학교일 것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도 어느 대학 출신인지를 가장 먼저 알고 싶어 한다. 이를 통해 그는 어떤 사람이고 사회적 위치는 어느 정도인지를 지레 짐작한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인생의 성패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결혼이나 취업 때만 해도 명문대 출신은 처음부터 점수를 얻고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너도나도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하고 초중고교 수업의 목표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입시과열과 각종 과외의 성행도 이 때문이다. 부모들이 틈만 나면 자녀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누구나 대학 간판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아이들이나 자신의 회사일 경우에는 생각이 달라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영국 BBC방송이 우리 수능시험을 ‘사생결단(Do or Die)의 시험’ ‘남은 인생을 결정할지도 모르는 시험’이라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현실을 족집게처럼 잘 집어냈지만 어쩐지 비아냥거림이 섞인 것만 같아 껄끄럽다. 이 방송은 “많은 한국인들은 일류대에 들어가는 것을 인생에서 성공하는 첩경으로 믿고 있다”며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업, 좋지 않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지 않은 직업을 갖게 된다고 믿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사회에서 능력 평가 기준은 앞으로 ‘어떤 대학을 나와 누구를 알고 있는지’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BBC방송의 일침이다.

▷시험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시험 때면 얼마든지 실수를 할 수 있다.‘학벌 없는 사회 만들기’ 김동훈 사무처장(국민대 교수)은 “시험제도는 야만이다. 사람이 일생에 치를 만한 시험이란 운전면허시험 정도면 족하다”고 말한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시험에 목숨걸고 매달리는 사회, 시험의 난이도를 놓고 매년 전 국민적 논란이 이는 사회는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사회다. 이 거대한 학벌주의의 늪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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