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김병현 신드롬의 그림자

  • 입력 2001년 11월 7일 17시 17분


김병현의 소속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대망의 2001년 월드 챔피언쉽을 가져갔다. 사실 막내구단으로서 창단 4년 만에 MLB 정상에 선 것은 최단기간 기록이고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사람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응원한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보지도 못하고 늙어죽은 사람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그토록 어려운 우승에 우리나라 출신의 청년 김병현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믿어지지 않는다.

김병현은 광주일고를 졸업한 성균관대 97학번으로, 뉴욕 메츠 서재응의 고교 1년 후배이자 시카고 컵스의 최희섭보다는 1년 선배이다. 사실 95년 고교야구 시즌을 앞두고 가장 주목받았던 기대주는 김병현이 아닌 서재응 이었다. 정통파투수가 아닌데다 체격도 작은 김병현은 아무래도 관심이 덜 가는 선수였다고 봐야 하겠다.

그러나 2학년이던 95년 제50회 청룡기 고교야구에서 김병현은 큰일을 저지르면서 야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그 대회에서 김병현은 무려 23이닝 연속 무실점, 43탈삼진과 방어율 0.035라는 엽기적인 기록을 보여주며 팀에게 우승을 안긴다. 당시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었던 서재응이 선발로 나와 초반에 무너지면 김병현이 끝까지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고교야구에서 투수의 혹사는 운명과도 같은 것인지라 3학년 때의 김병현은 연투의 후유증으로 몸 여러 곳에 이상을 일으키며 2학년때와 같은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이미 검증이 끝난 상태. 당연히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없던 연고구단 해태는 김병현을 잡을 여력이 없었다. 대신 당시 삼성그룹의 인수와 더불어 스포츠팀에 무한 투자를 감행하던 성균관대가 김병현을 낚아갔다. 그해 신진식이 삼성화재 배구단에 입단하면서 받은 학교 지원금 중 상당수가 김병현 스카우트에 들어갔다는 소문이고 보면 그 액수는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무튼 한번 부상의 공포감을 느껴본 김병현은 대학 와서는 실리위주(?)의 피칭을 하게 된다. 그의 대학 시절 피칭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저게 그 김병현이 맞나"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국내대회에서의 그의 투구는 정말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물론 모든 대회, 모든 경기에서 다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국내에서 부진하다가도 중요한 경기는 꼭 잡아주고, 또 국가대표로 나가면 제 기량을 회복하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때부터 이미 야구계에는 "병현이가 미국 가려고 몸을 사린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병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98년 아시안 게임. 중국전에 선발투수로 나선 김병현은 삼진 퍼레이드를 펼치며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고 사이닝 보너스 225만불이라는 최고의 조건으로 D백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풀타임 메이저 리그 첫해(지난해는 가을에 잠시 AAA로 내려간 적이 있다)에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번 애리조나의 우승을 기뻐하면서 김병현의 성취가 대견스럽다. 하지만 이번 김병현의 성공이 가져올 부정적인 측면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병현은 언더핸드에 가까운 사이드암 투수이다. 전 세계적으로 잠수함 투수들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던진다'는 것은 신체구조에 역행하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동작이다. 특히 아래에서 위로 던지는 것은 부자연스러움의 정도가 더 심하다. 그래서 사이드암은 선수생명이 길지 못하다. 게다가 요즘은 팀마다 중심타선에 좌타자나 스위치히터들이 많이 포진해 있어 잠수함투수의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고교-대학팀들에는 여전히 옆구리 투수들이 많다. 타자들의 중심이동이 좋지 못한 학생야구의 경우 당장 써먹기는 좋은 게 사이드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선수들은 어릴 때 이미 골병이 들어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하고 시드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꼭 김병현의 활약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니겠지만 사이드암 투수들의 수는 줄지 않고 있다.

또 하나 무조건적인 메이저리그에 대한 환상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박찬호와 김병현의 활약으로 ML이 만만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곳은 땅에 떨어진 자기 팔을 들고뛰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그 전쟁터보다 더 처절한 곳이다. 능력 있고 결심이 선 선수의 미국진출은 말릴 이유가 없지만, 김병현의 활약이 한동안 다소 거품이 빠졌던 무분별한 해외진출에 다시 불을 붙이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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