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신숭겸

  • 입력 2001년 10월 31일 19시 09분


TV사극을 보면 가슴 찡한 장면들이 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시청자들은 마치 실제상황인 듯 드라마에 빠져든다. 얼마전 방영된 사극 ‘왕건’의 한 대목. 고려군이 후백제군에 포위돼 왕건이 견훤에게 목숨을 잃을 처지가 됐다. 이때 신숭겸 장군이 묘책을 낸다. 자신이 왕건의 옷을 입고 전투에 나서겠으니 왕건은 그 사이 전쟁터를 빠져나가라고. 두 사람의 대화가 눈물겹다. “나더러 도망을 가라는 것인가. 놓아라, 나는 아니간다, 아니가!”(왕) “형님 폐하, 형님 폐하를 위해 목숨을 다할 수 있게 돼 이런 기쁨과 영광이 없사옵니다.”(신)

▷전라도 곡성 출신으로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은 체격이 장대하고 용맹이 남달라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왕건은 이를 기려 이름이 능산이었던 그에게 평산 신(申)씨란 성을 하사했다. 신립 장군, 신사임당, 해공 신익희, 국무총리를 지낸 신현확씨 등이 모두 평산 신씨다. 그가 태어난 곡성 목사동면 구룡리 일대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도 칭송의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1000년 전 그가 보여준 충성심과 의로움, 용맹심을 가진 사람을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서일까.

▷그가 이처럼 돋보이는 데는 지역감정으로 찢어진 지금의 나라상황이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전라도 출신이지만 고려왕조에서 크게 활약했다. 그 시절 이 땅은 3국으로 갈렸지만 사람을 쓰는 데 출신지 차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왕건 밑에는 도선국사 박술희 등 전라도 출신이 많았고 왕건의 둘째 부인 오씨도 나주 사람이었다.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땅 상주(지금의 문경) 출신이었다.

▷민주당 배기선 의원이 최근의 여권 위기와 관련해 ‘신숭겸 같은 인물이 나와야 하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목숨(정치생명)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한때 여권 공조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자민련으로 이적하기까지 했던 그가 이시점에서 그런 말을 한 의도가 궁금하다.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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