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 에세이]이은령/절망적인 현실에도 출구는 항상있다

  • 입력 2001년 10월 17일 18시 49분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배우기

회사의 프로그래머로 10년, 학교강단에서 8년, 실제 사회현장과 교육현장을 모두 경험했기에 늦은 나이지만 내 능력을 검증해 보겠다고 심사숙고 끝에 벤처회사에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내 오랜 경험과 자신감이 두려움과 공포로 바뀌는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회의 모든 메커니즘은 정교한 톱니바퀴와 같이 서로 부둥켜안고 굴러가고 있어 신생 벤처회사의 새 제품에 눈 돌리고 귀 기울일 여유가 없어보였다.

직접 현장에서 부딪치면 “제품은 훌륭하고 세계적인 상품가치가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창의적인 아이템이다”며 극찬은 아끼지 않지만 선뜻 써보겠다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진입장벽이 더 높아 보였고 담당자들의 관례적인 말들이 발걸음을 돌리게 했다.

거대한 시장 앞에 큰 유리벽이 놓여 있었지만 곧 출구를 찾는 연구가 시작됐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마케팅한 A업체의 기존 납품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제품을 부품으로 사용하여 A회사에 납품하려고 한다고. 처음으로 출구가 열린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가위 바위 보’ 게임을 생각해봤다. 컴퓨터로 표현 가능한 정보인 0과 1, 흑과 백, yes와 no에서는 이기고 지는 이자(二者)관계 결정만이 보일 뿐이다. 지금까지 컴퓨터를 두드리며 살아온 나로선 이자(二者)결정이 너무도 친숙해 있었다. 생산자와 소비자, 제조자와 구매담당자 그것만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가위와 보’만 있는 승자와 패자관계 외에 엄연한 ‘바위’라는 새로운 영역이 있고 이 영역으로 인해 완벽한 승자가 아닌 서로간의 ‘관계’가 중시되는 또다른 공간이 있음을 실감했다. 고정관념과 자신이 속한 영역의 벽을 허물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서로 “윈-윈-윈(win-win-win)”할 수 있는 눈을 뜨게 됐다.

가위와 보 사이의 새로운 시장개척과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시켜주고 지혜롭게 더불어 사는 관계 영역인 바위. ‘가위 바위 보’ 게임 속에 관계를 중시해왔던 우리 선인들의 지혜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은령 <(주)알파브레인 대표이사·www.ab21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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