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민웅/민주와 정의 왜 실천 못하나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8시 52분


‘이용호 게이트’ 같은 엽기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비리를 구조적으로 예방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지 ‘깃털’만 몇 명 처벌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를 흔히 듣는다. 여기서 말하는 제도적 장치란 법적 제도를 말한다. 옳은 말이다. 분명히 어떤 부정과 비리는 법적 제도가 미비해서 생기는 것도 있다.

▼법외에 가치 내면화도 필수▼

그러나 법적 제도만 갖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법을 만드는 것도, 법을 집행하는 것도, 법을 지키는 것도 사람이 한다. 어쩌면 법적 제도 못지 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제도, 즉 일상생활 속에서 형성되는 가치규범과 행위양식이라는 사회문화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법적 제도마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지역적 배타성이 강하게 드러난 ‘이용호 게이트’만 해도 법적 제도가 ‘끼리끼리 해먹는’ 행위를 장려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또 그런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 행위를 용인하는 독특한 사회문화적 풍토가 있기 때문이다.

시야를 조금 넓혀 보면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 가운데서 좋은 조항만 모아서 만들었다는 우리의 제헌 헌법이 8차례나 수정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것도 일상생활 속에서 형성된 우리의 가치규범과 행동양식이 헌법이 요구하는 행위규범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른바 민주 투사들이 만든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것도 이들의 행위양식이 민주적 가치규범이 요구하는 행위규범을 내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생활 세계에서 일상적인 상호작용과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형성되는 가치 및 행위규범이 법적 제도 못지 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제도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민주주의란 법적 제도만 갖추어 놓았다고 해서 저절로 작동하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진리에 가깝다. 시민으로서 국민이 민주적 가치와 행위규범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시민이 활성화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온전하게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적 제도와 사회문화적 제도가 상호 보완적인 작용을 해야만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두 겹 민주화(double democratization)론’의 요점이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나는 민주 투사들마저 말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그것이 요구하는 행위규범을 왜 실천하지 못하는가? 필자는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성찰은 반성과 유사하지만 사회과학적 개념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 성찰은 첫째, 행위 조건이 되는 사회 환경을 감시하는 구체적인 노력, 둘째 현실에 대한 이론적 경험적 지식의 축적 및 검증 노력, 셋째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그러한 지식을 현실에 실천하는 노력을 요구한다.

또 하나의 질문은 성찰을 통해 사회를 좀 더 낫게 구성하고 재구성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성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지적되는데, 우리의 지도자들은 왜 성찰에 소홀한가? 첫째는 탐착(貪着)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본다. 어떤 욕심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으면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특히 터무니없는 노욕(老慾)이 문제다. 둘째는 성내는 마음이다(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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