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굴욕적 계약'에 의혹까지

  • 입력 2001년 9월 21일 18시 42분


감사원이 부산아시아경기조직위원회에 대한 특별감사에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맺은 굴욕적인 ‘시드니 협약’을 적발하고도 숨겨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이번 사태를 두고 이권 개입 의혹까지 들먹여지고 있는 판이어서 감사원의 태도는 더욱 석연치 않다.

감사원은 경기장 건설 지연 등으로 내년 아시아경기를 제대로 치르기 어려우리라는 여론이 비등하자 올 5월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은 조사 과정에서 조직위가 OCA와 체결한 계약을 위반했다가 대회 개최권 박탈 위기에 빠지자 지난해 9월 비밀리에 ‘시드니 협약’을 다시 체결한 사실을 밝혀냈다. ‘사업추진에 관한 모든 권한이 OCA에 있음을 인정하고 계약이행 보증금으로 2000만달러를 추가 예치한다’는 이 협약의 내용이 조직위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달 초 ‘아시아경기 준비와 관련해 65건의 문제점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면서 ‘시드니 협약’건은 숨겼다. 그러다 숨겼던 사실이 밝혀지자 ‘계약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면 OCA가 보증금을 몰수한다는 조항 때문에 국익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조직위가 ‘독자적인 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OCA와의 당초 계약을 어기고 국내 업자들에게 휘장사업을 하도록 한 것이 발단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OCA는 조직위에 여러 차례 경고했으나 사업을 강행하는 바람에 대회 개최권 박탈 통첩을 받았고 이에 놀란 조직위가 ‘시드니 협약’을 맺은 것이다.

휘장사업에는 엄청난 이권이 걸려 있다. 때문에 ‘계약 내용을 몰라서 위반했다’는 조직위의 변명은 어이가 없다. 오히려 업체 선정 과정에서 이권에 개입했다가 뒤늦게 문제가 불거지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으리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당장 시급한 일은 굴욕적 협약의 실체를 밝히고 관계자들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이다. 휘장사업에 의혹이 있다면 이 또한 파헤쳐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부산아시아경기는 부족한 예산 때문에 경기장 건설이 지연되는 등 정상적인 대회 개최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런 마당에 다시 악재가 터져 나와 걱정스럽다. 부산아시아경기를 차질 없이 치르는 것은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는 별도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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