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문철/“임명職 안맡겠다더니…”

  • 입력 2001년 9월 20일 18시 32분


15대 대선을 석달 앞둔 97년 9월 11일, 여의도 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 당사에서는 꽤 인상적인 기자회견이 있었다.

권노갑(權魯甲) 한화갑(韓和甲) 김옥두(金玉斗) 남궁진(南宮鎭) 최재승(崔在昇) 설훈(薛勳) 윤철상(尹鐵相) 의원 등 이른바 ‘동교동 가신’ 의원 7명이 ‘집권 후 백의종군’을 선언한 것. 권 의원은 한보사건으로 수감 중이어서 서명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이들은 ‘김대중(金大中) 총재의 비서 출신 국회의원들이 드리는 말씀’이라는 결의문을 통해 “김 총재가 집권할 경우 우리들은 청와대와 정부의 정무직을 포함한 어떠한 임명직 자리에도 결코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김영삼(金泳三) 정부에서 드러난 가신정치의 폐해를 자기 희생을 통해 막아보겠다는 충정으로 받아들여졌다.

백의종군 약속은 이들만이 한 것은 아니었다. 김 총재는 하루 전인 10일 정치보복 금지, 차별대우 금지, 대통령 친족의 부당행위 금지 등 ‘3금(禁)법’ 추진을 천명하면서 가신정치의 차단을 약속했다. “집권하면 측근을 정부 임명직에 전면 배치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며 능력이 있다면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진출은 허용하겠다”고 공약한 것.

4년이 지난 19일 김대중 대통령은 남궁진 전 대통령정무수석을 문화관광부장관에 임명했다. 이에 앞서 ‘9·7’개각 때에는 김옥두 의원이 해양수산부장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나 남궁 장관이 공인으로서의 약속을 깨뜨린데 대해 한마디라도 해명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자신들이 한 약속을 과연 기억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당·청 갈등에 대한 청와대 참모진과 동교동계의 책임론이 여권 내에서 제기됐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부도덕과 오만이 쌓이고 쌓였기에 책임론이 나오는 것이다.

정치란 으레 그런 거려니 하고 또 참고 넘어가야 하는가, 씁쓸할 뿐이다.

문철<정치부>fullm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