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로 위의 숨바꼭질' 위성장비까지 동원 첨단경쟁

  • 입력 2001년 9월 17일 18시 55분


인천에 사는 이정우씨는 올 들어 벌써 3번 범칙금 통지서를 받았다. 서울 출퇴근 길에 부천 중동대로에서 단속 카메라에 연거푸 잡힌 것.

중동대로는 왕복10차선. 고속도로보다 넓지만 자동차전용도로가 아니다. 따라서 제한속도가 시속 70㎞. 이 사실을 몰랐던 이 씨는 씽씽 차를 몰고 다녔다.

“경찰이 비치파라솔을 갖다놓고 내리막길 아래 숨어 온종일 카메라를 눌러댑니다. 인천 사람들은 하도 당해서 여기를 지날 때면 바짝 긴장합니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영락없이 걸려들죠. 내가 돈 들여 표지판이라도 붙여놓고 싶은 심정입니다.”

부천중부경찰서가 이동식 카메라 한대로 이 도로에서 8월 한달 동안 잡은 과속 차량은 7000여대. 하루 250대 꼴이다. 벌금은 3∼7만원. 최근 카메라 한 대 값이 2500만원이니까, 경찰은 이틀치 벌금으로 카메라 값을 뽑은 셈이다.

화가 난 이씨는 27만원을 들여 차에 단속 카메라 감지장치를 부착했다. 위치측정시스템(GPS)과 핸즈프리가 결합된 이 장치에는 전국의 고정식 무인 카메라 위치가 입력돼 있다. GPS는 위성의 도움으로 현재 자동차 위치를 알아내 카메라 500m 전방에서 조심하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경찰이 들고 다니는 이동식 카메라는 위치가 수시로 바뀌므로, 이 장치를 붙였다고 안심할 수 없다.



이씨처럼 경찰의 ‘첨단 덫’에 걸려들어 역시 첨단기술로 맞서고 있는 시민이 늘고 있다. 7월에 등장한 이 GPS 장치는 수천 대가 팔려나가면서 생산업체도 아이케어프리 등 20여개 업체로 늘어났다. 수사 때문에 자주 과속을 하는 검찰 운전기사들과 경찰까지도 이 장치를 사갔다.

경찰이 올 상반기에 단속 카메라로 적발한 자동차는 470만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늘었다. 연말까지 1200만대가 적발돼 전국의 모든 차가 한번씩은 벌금을 물게되고, 벌금 총액도 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금은 고정식 무인 카메라 473대, 이동식 카메라 338대 등 모두 811대의 단속카메라가 전국에 설치돼 있지만, 이 숫자는 올해 말 1200대, 2002년 2600대, 2003년 3600대로 급격히 늘어난다.

고정식 무인카메라는 단속 건수가 줄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 대가 하루 평균 12건을 적발했지만, 올 상반기에는 9건으로 줄었다. 예고표지판이 있고, 위치가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동식 카메라는 지난해 하루 한 대당 평균 28건에서 올 상반기에는 60건으로 수직 상승했다. ‘게릴라 전술’이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자 최근 일부 업체는 인터넷 사이트에 ‘단속 카메라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동식 카메라도 감지할 수 있다”며 레이저 감지기를 판매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 장치는 거의 효과가 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동식 카메라는 자동차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레이저의 파장이 도플러 효과에 의해 변화한 정도를 측정해 속도를 계산한다. 따라서 자동차가 레이저를 감지한 순간, 이미 속도가 측정돼 빠져나갈 수가 없다.

아예 번호판이 보이지 않게 붙이는 편광필터도 일본에서 수입돼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 필터를 번호판에 붙이면 정면에서는 볼 수 있지만, 약간 위나 옆에서는 보이지 않아 카메라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이 장치는 불법. 하지만 적발돼도 범칙금이 2만원에 불과해 과속으로 벌금을 무는 것보다 훨씬 싸다.

경찰청 교통안전과 신현철 주임은 “과속 단속 카메라가 늘면서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가 지난해 상반기 5051명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3788명으로 25%나 줄었다”며 “시민까지 첨단 기술로 맞서기 보다 안전을 위해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실적 위주의 함정 단속보다, 제한속도를 분명히 알 수 있게 표시해 선의의 피해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동호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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