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일본 '베세토 연극제'를 보고

  • 입력 2001년 9월 4일 18시 47분


◇이중섭 삶 그린 '길 떠나는 가족' '창'곁들여 한국정서 표현 '호평'

일본 도야마현 토가. 공항에서 구불구불 산골길을 버스로 두어 시간 쯤 들어가면 첩첩산중에는 일본의 세계적인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가 세운 연극촌 ‘토가 예술공원’이 나온다.

올해 8회 째를 맞는 ‘베세토 연극제’의 전반부가 지난달 25일 이 곳에서 개막됐다. 이 행사는 10월말까지 도쿄 시즈오카 토가에서 계속 열리고 있다. 이번에는 한국 중국 일본 3개 국 외에도 인도와 러시아 극단이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임영웅 연출)와 ‘서울시극단’의 ‘길 떠나는 가족’(김의경 작, 기국서 연출)이 참가했다.

첫날은 스즈키 다다시가 연출한 ‘세상 끝에서 안녕’이 야외무대에서 공연됐다. 이 작품은 2차 대전후 일본의 전통 문화가 직면했던 미국의 글로벌 문화, 그리고 여기서 파생됐던 전후 ‘방황하는 세대’의 모습을 그렸다. 일본 전통극 스타일이 무대 디자인, 의상, 연기 등에서 현대적으로 변용됐으며 빠른 장면 전환과 시시각각 하늘을 뒤덮는 불꽃놀이, 붉은 연기 효과가 시청각적으로 전쟁 장면을 연상시켰다.

이에 비해 중국 ‘중앙 실험화극단’이 공연한 ‘비상마장’은 3명의 의형제를 맺은 극중 인물들이 마작 게임을 하기 위해 한 명의 의형제가 오기를 기다리는 상황 중심의 극이었다.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 한 명을 기다리며 진행되는 이 작품은 극의 마지막 장면이 시작 장면으로 되돌아오는 원형적 구조로 ‘고도를 기다리며’의 극 구조를 생각나게 했다.

서울시극단이 공연한 ‘길 떠나는…’은 천재화가 이중섭의 비극적 삶을 그린 작품. 그의 예술혼, 편치 못했던 한일의 역사로 인해 해체된 그의 가족 이야기 등이 대사 중심으로 전개된다. 강신구 이은미 박승태의 열연과 박윤초의 창이 어우러져 한국적 정서를 무리 없이 표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사 중심의 극 장면들이 일본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한국의 역사와 작품 이해에 도움을 준 듯 상당수 관객들이 “찡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베세토 연극제는 한중일 3국이 모두 나름대로 특징있는 공연을 보여준 것 같다.

심 정 순(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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