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공적자금 결국 국민부담

  • 입력 2001년 9월 2일 18시 32분


H투신 임원으로 일했던 P씨는 지난해 회사 퇴임 후 전 재산을 압류당했다. H투신에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데 대한 책임이 지워져 그의 집에는 TV장롱 등에도 차압 딱지가 붙어 있다. 다른 금융회사에 취업하기도 했지만 월급봉투가 고스란히 국고로 들어가는 것을 알고 나서는 새 직장마저 포기했다.

그에게 ‘이래라 저래라’는 지시 전화를 걸던 관료들도 고통을 받고 있는가.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오히려 좋은 자리로 영전해 있다. P씨는 “투신사 자산을 잘못 관리해 공적자금을 끌어쓸 수밖에 없었던 실책을 인정하지만 원인의 상당부분을 제공한 관료들이 무사한 것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털어놓는다.

재정경제부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1일 발표한 공적자금관리 백서에 금융기관 부실 책임을 물어 223개 금융회사 임직원 2506명에 대해 717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한 사실을 적어놓고 있다.

정부는 이번 백서에서 또 ‘공적자금 상환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공적자금 137조원 중 95조원의 정부보증채권(공적자금)의 만기가 2003∼2006년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한 해 23조∼24조원의 공적자금을 갚아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므로 다시 채권을 찍어 나눠 갚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백서에서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을 하루 빨리 정상화해 공적자금을 거둬들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공적자금은 지금의 납세자와 ‘다음 세대’가 오래오래 짊어져야 할 무거운 빚이 돼 버렸다.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이한구(李漢久) 의원은 공적자금 중 최소한 120조원은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정부 여당의 맹공을 받은 적이 있다. 정부 여당은 “정부보증채권을 모두 손실로 보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공박했다. 하지만 이번 백서를 보면 결국 정부보증채권을 국가채무에 넣어 산정한 야당의 주장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적자금 운용과 관련해 민간에만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들의 책임소재는 따질 생각이 없는 관료들이 만든 것이 이번 백서가 아닌가.

최영해<경제부>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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