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황상구/석탑이 돌덩이로 변해간다

  • 입력 2001년 8월 13일 18시 21분


한국은 ‘석탑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석조문화재가 많다. 이는 양질의 석재가 많이 산출되는 자연조건에서 연유한다. 이 자연조건이 한민족의 인성에 부합하여 독특하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뛰어난 석조예술품을 탄생, 발전시킨 것이다.

한국은 2000년 말 현재 국보 64기, 보물 442기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637기의 시도지정 문화재를 합해 1143기의 석조문화재를 갖고 있다. 석탑 석불 부도 석등 등이 그 주류를 이룬다. 석조문화재가 전체 문화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국보의 76%, 보물의 42%, 시도지정 문화재의 85%에 달한다.

국내 석조문화재는 축조시기가 삼국시대로부터 조선말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축조된 지 거의 1000년을 넘은 데다 외부환경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채 풍화를 심하게 받았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과 강도가 많이 훼손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산성비가 석조문화재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다. 선진국들은 풍화와 공해로 무너져내리는 문화재들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암석은 다른 소재와 비교할 때 수명이 길다. 그러나 자연에 노출되어 있으면 아무리 견고한 암석이라도 서서히 풍화되어 결국 쉽게 부서지게 된다. 예를 들어 충남 부여의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9호)이나 경북 경주의 불국사 다보탑(국보 20호)은 1200년이란 세월 동안 모서리가 둥그렇게 마모되고 표면이 갈라져 떨어져 나오는 중병에 걸려 있다.

전국 곳곳에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석조문화재가 수두룩하다.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겨준 선조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는 한번 망가지면 영원히 복구할 수 없는 국민의 재산이다.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석조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학적으로 석조물의 훼손상태와 훼손원인에 대해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석조문화재는 암석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형상으로 조각되었기 때문에 암석이 풍화, 훼손되면 그 형상도 없어지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풍화 양상을 파악하고 더 이상 풍화되지 않도록 보존 처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석조문화재의 암석은 각종 광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암석의 성질과 물성 및 풍화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있어야 보존방안에 대한 올바른 대책이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광물학 또는 암석학 전공자들이 석조문화재 보존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석조문화재도 다른 문화재와 마찬가지로 인류 전체의 유산이다. 자신과 상관없는 돌덩이로만 생각해서는 문화민족이라고 할 수 없다. 나와 민족 모두에게 물려진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당국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문화재 보존정책을 펴야만 하겠다.

황 상 구(안동대 교수·지구환경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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