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병종/문화의 상·하수도

  • 입력 2001년 8월 12일 18시 27분


문화는 물과 같다. 어딘가에서 흘러와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샘물이 터지는 근원이 있고 흘러가서 고이는 웅덩이가 있다. 맑은 물줄기가 있고 탁한 물줄기가 있다. 한 나라의 문화 역시 상수도와 하수도처럼 맑은 문화와 탁한 문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가 혼재하며 흐른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이원성(二元性)이 일본만큼 뚜렷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일본의 고급문화, 즉 상수도 문화의 물줄기를 대어 온 것이 상당 부분 한국이었다는 것을 일본 쪽에서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한국은 말하자면 고급문화를 전파해 준 스승의 나라였던 것이다. 한국인은 폄하해도 한국문화는 숭상하는 그들의 이중적인 태도는 이 때문이다.

▷일본은 자국 문화의 전형 창출에는 부진한 대신 인접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고 보존하는 데에는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자국문화, 타국문화를 가리지 않고 고급문화를 애호하고 보존하려는 일본인의 문화의식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미술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역대 명작을 맹렬하게 수집하는 것은 물론 서구의 인상파 미술품까지도 막대한 재원을 들여 수집하여 자국화한 것도 그 단적인 한 예다. 하지만 오늘날 일본 문화는 문화의 두 물줄기 가운데 압도적으로 저급문화가 고급문화를 구축하는 형세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그 많은 밀실의 ‘방(房)’문화도 그 한 표징이다. 저급문화일수록 급격하게 확대 재생산되고 전파되는 법이다.

▷왜곡된 역사교과서 문제로 우리측이 일본문화 개방의 연기를 검토하겠다고까지 했지만 일본측은 오불관언, 끄떡도 하지 않는다. 기왕에 문화개방을 연기하겠다고 한 마당에 지나치게 저급한 일본 문화는 아예 봉쇄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그와 더불어 역사적으로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맑고 높고 그윽한 고급문화의 물줄기를 다시 일본 쪽에 대어주는 일도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일본 문화 속에 상수도 문화가 하수도 문화를, 고급문화가 저급문화를 구축해내기 시작할 때 그들이 역사교과서 문제 또한 균형있는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김병종 객원 논설위원(서울대 교수·화가)

kimby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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