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김영진/꽁치조업 日대응 비현실적

  • 입력 2001년 8월 8일 18시 42분


한국과 러시아가 정부간 협정을 맺고 러시아로부터 조업 허가를 받아 한국어선단이 남쿠릴 주변 수역에서 꽁치조업에 나서게 되면서 이 문제가 한-일-러 3국간의 외교분쟁으로 비화됐다. 일본은 이를 ‘일본의 주권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일-러 관계는 한국의 이익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일-러 관계를 기본적으로 규정하는 중요 요인의 하나가 바로 북방영토 문제다.

1956년의 일소공동선언에는 2개 섬(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양국간 평화조약 체결 후에 소련이 일본에 인도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60년 소련은 외국 군대가 일본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추가 조건을 일방적으로 일본에 통보했다. 그 후 오랫동안 공동선언의 유효성을 놓고 양국의 대립은 계속됐다. 또 1973년 발표된 일소공동성명에는 양국간의 ‘미해결 제 문제’ 운운하는 구절이 있는데 ‘제 문제’ 중에 영토문제가 포함되느냐 아니냐를 놓고 양국은 30년간 논쟁을 거듭해 왔다.

일본의 대소련(러시아) 외교는 상대로 하여금 영토문제의 존재를 확인시키려는 노력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토문제에 대한 일본의 집념은 강하다. 일본은 때로 신축성을 보이기도 했으나 ‘영토문제의 해결 없이는 대규모 경제협력이 불가하다’는 정경분리 불가분 정책을 견지해 왔다.

소련(러시아)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권 때부터 점차 다소의 현실적 자세를 보여 4개섬의 귀속문제를 토의한다는 것을 문서화하는데 응하게 됐다. 그러나 4개 섬 전부는 물론 그 중 2개 섬에 관해서도 러시아가 직접적으로 반환의사 표시를 한 적은 없다. 만약 일본이 작은 2개 섬의 반환으로 만족하고 나머지 2개 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는 평화조약에 응한다면 러시아는 전향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안은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수락할 수 없는 것이다.

2개 섬을 먼저 반환받고 나머지 2개 섬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일본의 주권을 인정한다면그 반환시기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시대의 구상이었다. 그러한 ‘4개 도서 분리 반환론’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에 의해 계승됐고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 당시 시차적 분리 반환을 전제로 한 별도 협상에 합의하는 쪽으로 보다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의 주요 인사들은 분리협상론에 반대하고 있으며 4개 섬의 일괄 반환을 전제로 한 종래의 접근법을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견할 수 있는 장래에 일-러간의 영토분쟁이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문제는 앞으로도 양국간의 정치, 경제, 기타 여러 분야에서의 관계 발전을 저해하거나 견제하는 주요 요인으로 계속 작용할 것이다.

북방영토 문제는 민족적 감정이 관련된 예민한 문제다. 그러한 영토 주변 수역에서 한국 어선이 러시아 정부의 허락을 받고 현재 조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업 문제는 순전히 상업적 어업적 문제이지 일-러간의 영유권 문제와 무관하며 일-러 중 어느 일방의 입장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러시아도 일본의 항의와 조업허가 취소 요구를 거부했다.

꽁치조업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시기적으로 늦었고, 법리론에 치우친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한-러간의 협정 체결은 지난해 12월인데도 일본 정부가 본격적인 대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금년 3월경이었다.

이처럼 대응이 늦어진 것은 국내정치의 혼미에다 외무성 기밀비 유용사건,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과 외교관료간의 갈등 등으로 인한 외무성의 ‘마비’ 때문으로 알려졌다. 또 자민당 내 농어업 분야의 실력 있는 의원들과 해당 선거구 출신 의원들의 압력이 외교 당국의 신축성 있는 대응을 견제했다는 것이다.

일본 산리쿠 수역에서의 한국어선 꽁치조업 허가 문제를 일본 정부가 어떻게 다루든 일본측은 이번 사건에 대한 이의 제기의 사실을 분명히 기록에 남기면서 앞으로도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끼치는 손상을 극소화하는 외교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김영진(金英鎭·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 겸 일본 게이오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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