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殺 風 景(살풍경)

  • 입력 2001년 8월 7일 18시 27분


殺 風 景(살풍경)

殺-죽일 살 綱-벼리 강 秩-차례 질 濯-씻을 탁 裙-치마 군 煮-삶을 자

孔子로 대표되는 儒家(유가)의 기본 정신은 ‘仁’에 있으며 그것은 두 계층간의 상호 關係를 설정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三綱五倫(삼강오륜)으로 여기에 보면 夫婦, 君臣, 父子, 親舊, 長幼(장유)간의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를 자세히 보면 특징을 하나 찾을 수 있다. 즉 하나같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을 뿐 인간과 국가, 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규정은 없다는 점이다. 儒家의 ‘人間爲主’ 철학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에 대한 배려, 즉 處世에는 이골이 나게 되었지만 막상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는 미숙하기 이를 데 없어 韓中 양국 공히 ‘關係’는 있되 ‘秩序’(질서)는 없는 기형적인 국민성을 형성하고 말았다. 그 결과 공중도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바야흐로 第六倫運動(秩序)이 필요한 때다.

자연히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볼썽 사나운 꼴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요즘 같은 피서철에는 그런 광경을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다. 끼어들기를 한다든지 갓길 운행을 하는 것, 피서지에서 밤늦도록 飮酒歌舞(음주가무), 高聲放歌(고성방가)하는 것 등 많다. 이 모든 것이 秩序意識이 결여된 데서 나오는 현상이다.

옛날 이런 경우를 두고 ‘殺風景(살풍경)’이라고 했다. 사람의 ‘기분을 망쳐 놓는 경우’, 요즘 말로 하면 ‘무드를 깨는’ 경우다.

李商隱(이상은)은 당나라 후기 唯美主義(유미주의) 정신으로 珠玉(주옥) 같은 詩를 즐겨 썼으며 특히 그의 시는 난해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雜纂(잡찬)이라는 책을 지어 당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여섯 가지의 ‘殺風景’을 제시했다.

첫째, 淸泉濯足(청천탁족)-약수터에서 발을 씻는 행위,

둘째, 花上乾裙(화상건군)-아름다운 꽃 위에 빨래를 널어 말리는 행위

셋째, 背山起樓(배산기루)-산을 등지고 집을 지어 산세를 감상할 수 없도록 만든 경우

넷째, 焚琴煮鶴(분금자학)-거문고를 불쏘시개로 삼아 학을 삶아 먹는 것

다섯째, 對花嘗茶(대화상차)-꽃을 감상하면서 술은 마시지 않고 차만 마시는 행위

여섯째, 松下喝道(송하갈도)-청아한 소나무 숲에서 쉬고 있는데 불현듯 사또 행차 지나가는 소리.

경제적으로 크게 윤택해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질서의식은 매우 낮다. 혹시 오늘 하루 ‘殺風景’을 연출하지 않았는지 우리 모두 한번 반성해 볼 일이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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