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이부부의 세계 맛기행]파삭파삭한 스페인의 통돼지구이

  • 입력 2001년 7월 18일 11시 57분


스페인의 '세고비아' 하면 기타 하나만 생각날 정도로 별로 아는 것이 없었던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 세고비아 시내로 들어선 것은 정오가 막 지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엔 벌써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의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댔고 카페들이 내놓은 의자엔 술에 취해 수다를 늘어놓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습니다.

" 오늘 뭔 날이여? 관광객들은 아닌 것 같은데..."

" 스페인 사람들이 원래 이런데잖어. 금요일이니까 더 그런가봐. "

그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풍악소리.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인형들과 악단 행렬이 우리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린 순식간에 떠들석한 퍼레이드와 구경꾼들에 휩싸여버렸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이 '성 베드로 축제'라는 거였는데 세고비아의 캘린더에는 하루 걸러 하나씩 이름 다른 축제들이 빽빽하더라구요.

'먹고 마시는 것에는 스페인 사람들을 당할자가 없다' 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네요. 이 나라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벼운 커피와 추로스(Churros)라는 긴 도너츠로 요기를 하고 오전 11시쯤에 스낵으로 다시 한번 속을 약올려준 후에 오후 1시 반부터 약 4시까지 본격적인 점심식사를 합니다.

오후 여덟시나 아홉시 즈음에 또 맥주나 음료 한잔과 함께 가볍게 스낵을 먹은 후에 밤 열시 정도에 일반적인 저녁식사를 하죠.

그리고는 다시 바를 옮겨 다니며 한잔 두잔 비우며 새벽을 맞는 일이 예사라고 하네요. 게다가 이런 축제라도-매우 빈번히-있을라치면 온 동네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와 낮잠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옆사람들과 수다떨면서 보내는 게 일상이랍니다.

이렇게 많이 먹고 마시는 것까진 좋은데 하루 5끼를 먹다 보니 점심시간,저녁시간이 우리와는 달리 많이 늦지요. 저흰 그걸 잘 모르고 밥 먹을 궁리를 했다가 오늘과 같은 비극적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답니다.

예상하지 않았던 흥겨운 축제의 행렬을 만난 것만으로도 즐거웠지만, 이곳 세고비아에 '새끼돼지 통구이(Chochinillo Asad)'가 유명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왔기에 이걸 꼭 먹고 돌아가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죠. 마드리드에서 버스 왕복표를 끊어 당일치기로 왔기 때문에 저녁만 먹고 얼른 터미널로 가면 막차 시간엔 넉넉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스페인 사람들처럼 다섯끼를 다 챙겨먹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늦은 아침 후에 저녁을 배불리 먹기로 하고는 축제 행렬에 휩쓸려 퍼레이드도 보고 그 유명한 '백설공주 성'도 구경하고 다닐 때 까지만 해도 우린 마냥 신이 났었답니다.

오후 6시쯤 된 시간. 계획대로 '새끼돼지 통구이'를 먹으려고 식당에 갔는데 정작 아무도 밥먹는 이가 없는 겁니다.

"이상하다. 저녁시간인데 왜 아무도 밥먹는 사람이 없지?"

"그러게. 더워서 그런가? 아니면 비싸서 다들 밥은 집에서 먹고 나오나?"

한산한 식당에 들어가서 거의 놀고 있는 종업원에게 물었습니다.

"저녁식사 되나요?"

종업원은 시계를 힐끔보더니 마치 우리가 점심 나절에 저녁 내놓으라고나 한듯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8시30분'부터 저녁을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허걱... 무슨 저녁식사 시작이 8시30분이란 말인가? 그럼 앞으로 장장 두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한단 말인가?

그 이후 세고비아 일대를 휘젓고 다니며 "저녁 식사 되나요?" "혹시 저녁 식사...?" 하고 불쌍하게 물어보길 여러 집째. 아무도 밥 된다는 곳은 없고 8시반 혹은 9시,심지어는 10시에 오라는 기막힌 곳도 있는겁니다. 내 돈 내고 밥먹겠다는데도 밥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 일을 어쩌나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지친 다리와 주린 배를 부여잡고 낯선 도시를 다시 배회할 수밖에 없었죠.

이젠 축제도 시들하고 이쁜 건물도 눈에 안들어오고,오직 머리속에는 좀있다 먹을 통돼지만 둥둥 떠다니길 두시간 여. 급기야 식당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백번 하기 등등으로 시간 가기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8시 30분! 하지만 식당엔 밥먹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없고 전부 와인 한잔,맥주 한잔 시켜놓고 수다떨기에 바쁜겁니다. 아까 우리를 비웃던 그 종업원이 여전히 약간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그제서야 식탁보를 깔고 양념통을 챙겨오며 그날의 첫번째 저녁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더라구요.

휴우~ 그래도 밥주는게 어디냐 하고는 예정대로 우린 '새끼돼지 통구이(Chochinillo Asado)'를 주문했습니다. 새끼돼지 통구이란 말 그대로 약 50Cm 크기의 새끼돼지를 꼬치에 끼워 숯불에 빙빙 돌려가며 구워내는 요리로 1인분을 시키면 그 돼지의 약 1/6정도를 잘라내어 줍니다. 돼지가 얼마나 조그만지 엉덩이 반쪽을 도려낸 살덩어리가 접시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지요. 겉에 바싹 구워진 껍질부분은 바삭바삭해서 칼을 갖다대면 와자작하고 쪼개지며 벌어지고 그 속에는 비싼 고기집에서 먹는 '수육'같이 연한 어린 돼지 고기가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별다른 양념없이 주는 요리라서 그냥 소금을 찍어먹으면 되는데 껍질은 약간 딱딱하면서도 쫄깃거리고 껍질 안의 기름과 살은 입에 넣으면 그대로 녹는다고 말할 정도로 부드럽고 촉촉하더라구요. 그 고기맛이 마치 '보쌈집'의 돼지고기 같아서 정말 '쌈장'과 '상추' 그리고 싱싱한 굴이 들어간 '보쌈김치'가 있었더라면 금상첨화였을텐데 하는 망상을 해가며 꼬리까지 싹싹 맛있게 뜯어먹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녁 9시 40분쯤 식사를 마친 것 까지는 좋았죠. 해가 늦게 지는 유럽의 여름밤은 여전히 환하고 아직까지도 밥먹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투덜거리며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갔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막차가 막 끊어진 겁니다. 으... 아직도 해가 쨍쨍한데 버스가 끊어지다니...저녁밥만 먹고 왔는데...그것도 1번 손님으로...

터덜터덜 걸어 다시 시내로 들어오자 시간은 10시를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아름다운 중세의 건물들이 석양을 받아 빛나고 그 앞에선 낮부터 부지런히 설치한 무대에서 재즈 공연이 막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무대 앞에 모여서 혹은 주변의 거리 카페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고 박수를 치며 음악을 즐기고 있었죠. 그들을 흥겹게 하는 것은 특정한 축제가 아니라 뜨거운 태양이 물러나고 시원한 밤이 시작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외면당했던 그 식당들에는 비로소 손님들이 빽빽이 들어차고 화려한 저녁식사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린 저녁 식사 한끼 먹겠다고 벼르다 마드리드로 가는 차 놓치고 버스표 날리고 아침에 지불하고 나온 호텔비까지 다 날리고, 축제가 한창인'세고비아'에서 예정에 없던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더란 말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더랍니다.

☞ 어디서 먹나요?

[새끼돼지 통구이 요리]세고비아 명물 요리인 '새끼돼지 통구이(Chochinillo Asado)'는 세고비아 구시가의 입구 수도교 앞 광장인 'Plaza del Azoguejo' 와 구시가 중심에 있는 광장 'Plaza Mayor' 주변 레스토랑들에서 먹을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통있고 유명한 집이 수도교 바로 아래 있는 'Meson de Candido'라는 식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리가 요리니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더라구요. 거기다 고기만 덜렁 먹을 수 있나요? 유럽에선 음료는 기본이고 전채요리,메인요리,디저트까지 안시키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으니 다 갖춰 먹으려면 이만 저만 부담되는 게 아니죠. 게다가 요리 이름도 잘 모르니 구색 갖춰 시키기도 어렵구요. 그래서 대부분의 식당에선 전채,메인,디저트에 와인과 빵이 포함된 세트메뉴를 저렴하게 준비하고 있으니 이편이 주문하기도 쉽고 저렴하게 풀코스를 해결할 수 있을것 같네요.

가격 : 통돼지구이 한접시 대략 2400페세타(16800원정도, 1페세타=한화 약7원)

전채(샐러드),메인(통돼지구이),디저트(아이스크림),와인 세트 메뉴 3000페세타+ 세금 7% (ㅠ.ㅜ)

잊지 마세요. 스페인에선 점심 든든히 먹고 최소한 9시까지 견디는거! 그리고 막차시간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_-;

저녁 한끼 먹으려다 호주머니 왕창 털린 꿈틀이부부.

꿈틀이부부 tjdaks@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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