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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7월 3일 11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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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하고 현명하며 유쾌한 재능
"'러시아 전쟁 원조' 뉴욕 지부를 통해 러시아로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뜻밖이었지만 기꺼이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누구든 제가 원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에게 썼다는 것에 놀랐겠죠? 당신은 제가 괴테 다음으로 좋아하는 문학의 거인입니다. 내가 반하고, 또한 작가로서의 내가 그 누구보다 은혜를 입은 작가지요. 당신이야말로 러시아 문학 전통이 지닌 모든 위대함을 반영하는 러시아적 작가입니다. 요즘 나는 마침 단편 〈이반 수다례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당신의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재능을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 토마스 만(1875-1955)의 편지 중에서. 1943.5.8.
1918년에 가족과 함께 오데사로, 오데사에서 파리로 망명의 길을 떠난 톨스토이에게 그곳에서의 삶은 생애 최악의 고통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권리 없는 자, 조국과 절연된 인간, 보잘 것 없는 인간, 어떤 상황에서든 그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은 무익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이런 아픔을 짓누르며 톨스토이는 떠나온 조국의 새로운 현실을 그린 3부작 소설 《고뇌 속을 가다》의 첫 권인 《자매》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베를린에 표류한다. 러시아 망명객으로 들끓던 베를린에서 그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질 무렵 그곳에 온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슈코프(막심 고리키)와 우정을 나눴고, 그의 도움으로 1923년 여름 러시아에 돌아온 톨스토이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잃어버렸다 되찾은 조국을 노래했다.
◇ "러시아인은 사랑이요 기쁨이요 생명"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장편소설뿐 아니라 수많은 단편과 중편·역사소설·희곡 등을 남겼고, 특히 러시아인의 독특한 기질과 성격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평론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머니 알렉산드라 레온치예브나는 톨스토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지주인 남편 곁을 떠나 니콜라예프스크시 토지관리국 직원인 알렉세이 아폴로노비치 보스트롬과 결혼했다. 당시 사회의 봉건적인 사슬을 스스로 끊어버린 그의 어머니는 니콜라이 투르게네프의 사촌 조카로서, 문학적 교양이 높았으며 이후 소설가이자 아동작가로 활동했다.
삶에 대한 열정적인 질문으로 가득 차 있던 계부는 서구의 진보적인 사상에 심취한 자유주의자였다. 톨스토이는 유년시절을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숲과 강에서 홀로 꿈을 키우며, 투르게네프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와 푸쉬킨을 읽으며 문학에 심취한다. 16세 때 네크라소프와 나드손의 시를 모방한 시로 최초의 창작을 경험한다.
1901년 페테르스부르그로 옮겨 공업전문학교에 입학한 톨스토이는 간호학과에 다니는 여학생과 19세의 나이에 이른 결혼을 했다. 당시 젊은이들로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가두시위와 집회에 참여하고 사회민주당에 소속돼 활동하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이 무렵 바체슬라브 이바노프, 발몬트, 벨르이 등 상징주의자들과 교류하며 데카당스 계열의 시들을 써보기도 했지만, 기괴함과 추상적 신비에 치우치는 그들의 경향을 수용하지는 않았다. 1909년 최초의 중편 《투레네프에서의 한 주일》을 선보인 후 계속해서 장편소설과 희곡작품을 발표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톨스토이는 〈러시아 통보〉지(誌)의 종
군기자가 되어 러시아의 최전방과 영국, 프랑스의 전선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2월 혁명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톨스토이는 10월의 볼셰비키혁명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망명의 길을 떠났다가 귀국해 소비에트 사회 건설에 참여하게 된다.
귀국 후 그는 문단에 대해 관조적이면서 리얼리스트적 면모를 물씬 풍기는 작품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소비에트 문단의 탄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특히 30년대에 들어서서는 고리키의 뒤를 이어 소련작가동맹의 의장이 되는가 하면 최고회의 대의원, 아카데미 회원 피선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은 3부작《고뇌 속을 가다(1921-1941)》와 나치의 침공으로 인해 미완성된 대하 역사소설 《표트르 1세(1943)》등으로 여기에는 러시아의 자연과 민족, 인간에 대한 톨스토이의 식지 않는 애정과 열정을 형상화 됐다.
◇ 순박하고 강인한 러시아인 유쾌하게 묘사
《괴짜들》에서 평범한, 아니 촌스럽고 어딘가 모자란 듯하지만 순박하고 강인한 러시아인을 묘사한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필치는 유쾌하다. 특별히 현란한 언어도 없고, 삶으로부터 유리된 관념들에 이리
저리 끌려 다니지도 않는다. 그는 작품 속에서 "파멸이 올지라도, 쓰디쓴 눈물을 흘릴지라도 살아야 해! 살자! 살아! 이전처럼 달콤한 안개나 절망 속에서 방황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구!"라고 소리친다.
또 《자매》에서 내면의 저열함으로 인해 사랑을 잃을 수밖에 없는 니콜라이 스모코브니코프는 처제에게 "간밤에 언니가 나를 배반했어!"라고 내뱉곤 어디론가 뛰어가는 상황에서도 그의 유쾌함이 드러난다. 니콜라이의 처제가 "자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걱정스러워 달려가 보니 그는 다리를 벌리고 서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연주하는 곡은 유행가였다.
톨스토이는 먼저 주인공들을 독자에게 친근하게 소개한다. 그들의 성격과 내면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초상 묘사는 정확하고 적극적인 말의 힘을 보여준다. 말의 힘은 곧 사고의 무기며, 이것을 토대로 역사적 사건들과 새로운 삶의 문제들이 폭넓게 전개될 수 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시대에 변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또한 스스로 그 답을 찾으려는 톨스토이는 예술에서 긍정적 유형을 모색했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추구하는 리얼리스트의 대범한 몸짓이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열아홉 살의 다샤는 페테르스부르그 법대에 갓 입학한 재능 있고 매력적인 처녀다. 다샤는 품위 있고 아름답지만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텔레긴을 향한 사랑의 감정에 눈뜨면서 다샤는 새롭고 성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편 명성 높은 변호사 니콜라이의 아내인 다샤의 언니 카챠는 아름다운 외모와 세련된 취미, 능숙한 사교술을 겸비했다. 카챠는 사교계의 모임에서 언제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카챠는 행복하지 못하다. 새로 맞춘 옥색 비단옷 앞자락에 묻은 샴페인 얼룩을 보고 비애를 느끼고, 매일 저녁 되풀이되는 퇴폐적인 생활을 슬퍼한다. 천박한 성격을 지닌 남편에 대한 애정도 식어버리자 연약하고 섬세한 카챠는 파리로 떠난다.
크림 반도의 아름다운 여름과 하늘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포도주를 즐기며 그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들, 그들에게 1917년의 페테르부르그를 움직이는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술과 사랑과 권태로 흐려진 머리 속을 스쳐지나가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다샤와 카챠 자매의 삶은 이제 어떻게 달라질까...
◇ 글쓴이 이형숙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모스크바대학에서 <1920년대 러시아 산문에서 소설에 대한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부산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만델슈탐의 《이집트 우표》를 통해 본 소설의 운명〉,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고뇌 속을 가다》연구〉 등이 있다.
◇ 북코스모스 가이드북 필자 E-mail : diona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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