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왕초보 장의사의 대소동 '장의사 강그리옹'

  • 입력 2001년 6월 8일 18시 49분


◇ '장의사 강그리옹'/조엘 에글로프 소설/185쪽 /8000원/ 현대문학

개점휴업 상태였던 장의사는 오랜만에 마을 사람 한 명이 죽어서 일거리가 생겼다. 영구차에 관을 싣고 장지로 출발했는데 일이 꼬인다. 그만 길을 잃고 묘지를 찾아 밤새 헤맨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관이 차에서 떨어지면서 시신이 웅덩이에 빠진다. 시체를 수습하던 심약한 장의사는 나무조각을 시체 얼굴에 떨어뜨리고 만다. 그런데 웬걸, 시신에서 코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소설은 어수룩한 장의사들이 벌이는 한판 소동을 통해 죽음을 희롱한다. 능수능란하게 시점을 바꿔가며 잰 걸음으로 달려가는 이야기가 영화를 닮았다.

이야기는 가벼운 블랙코미디 같지만 중간 중간 삶의 급소를 툭툭 건드린다. 평생 장의사로 살아온 주인공 강그리옹의 철학적인 자부심이 그러하다.

“이 세상 없어서는 안 될 두 종류의 인간이 있지. 바로 산파와 장의사야. 하나는 환영하고 다른 하나는 환송하거든. 사람들은 이 둘 사이에서 지지고 볶고 사는 셈이야.”

장의점 건너편에 ‘태양 카페’를 배치한 수법도 예사롭지 않다. 인간이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두 가지인 죽음과 태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 ‘시체 없는 장의사, 술 없는 카페’라는 설정, “죽은 사람을 죽인 게 무슨 살인이야”는 냉소가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런 신선함이 ‘다른 것을 다른 식으로’라는 현대미학의 구호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역자인 이재룡 교수(숭실대 불문과)의 평가다. 원제 ‘Edmond Ganglion et Fils’(1999년).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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