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밀착취재]이승한 삼성테스코사장 "경영도 예술"

  • 입력 2001년 6월 7일 18시 57분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삼성은 영국 최대의 유통그룹 테스코사를 상대로 삼성물산 유통부문의 매각 협상을 벌였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협상은 삼성물산 유통부문 CEO(최고경영자)인 이승한(李承漢·55) 대표이사의 거취를 놓고 막판 난관에 부닥쳤다.

삼성측은 90년대 중반 그룹의 신경영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비서실에서 기획통으로 잔뼈가 굵은 이대표를 넘기기를 꺼렸다. 반면 테스코측은 한국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을 높이려면 이대표가 새 법인의 사장을 맡아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CEO를 포함해 기존 유통부문 직원중 한명이라도 빠진다면 인수를 재고하겠다”는 테스코의 ‘으름장’이 주효해 이사장은 졸지에 외국계 기업의 CEO가 됐다.

그는 “한국 유통업계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경영의 질만 높이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한게 테스코측에 강한 인상을 준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도 유통분야에서 가능성을 확신했기에 흔쾌히 옮겼다”고 말했다.

이사장의 당면 목표는 할인점인 홈플러스를 2005년까지 업계 1위로 끌어올리는 것. 현재 7개에 불과한 점포 수를 2005년 55개로 늘리고 10조원대의 매출로 시장점유율을 30%선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최근 테스코 본사의 테리 리히 회장이 4조2000억원의 추가투자 계획을 발표해 공격경영을 벌이는데 필요한 ‘실탄’도 확보해둔 상태.

이사장의 궁극적인 관심은 국내 유통업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묘안을 찾는데 쏠려 있다. “요즘 제조업 경쟁력을 걱정하는 분이 많지만 한국의 유통산업은 제조업보다도 15∼20년 뒤처져 있습니다. 우량 중소기업들이 고전하는 이유도 유통업이 낙후된 탓이 크지요”

그는 “할인점이라는 이유로 품질은 따지지 않고 무조건 싼 제품만 판매하다 보면 고객의 외면으로 자멸한다”며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의 품질관리를 엄격히 해야 중소기업의 수준과 고객만족도가 함께 올라간다”고 강조했다.

이사장은 “경영도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다”며 자신의 지론인 ‘예술경영론’을 삼성테스코에서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점포 입지의 선정과 설계, 고객의 동선(動線)을 고려한 제품 배치 등에 유독 신경을 쓰는 것도 할인점 경영을 ‘예술’수준으로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홈플러스를 ‘할인점’이라는 용어 대신 고객 가치를 창조한다는 뜻의 ‘가치점’으로 표현한다. 작년 하반기에 문을 연 안산점과 북수원점 등은 이미 해당지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인천공항에서 서울 시내로 들어오기 전에 홈플러스 안산점에 들러 생필품 쇼핑을 할 정도라고. 그는 후발주자답게 ‘차별성’으로 승부해 업계에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이승한 삼성테스코사장 약력▼

△1946년 12월 경북 칠곡생

△대구 계성고,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

△70년 삼성그룹 공채 11기 입사(제일모직)

△78년 삼성물산(건설) 런던지점장

△84년 삼성물산(건설) 해외사업본부장

△94년 삼성그룹 비서실 신경영추진팀장

△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

△99년 삼성테스코 대표이사 사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