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손가락대신 PDA"…청과경매 IT혁명

입력 2001-05-31 18:46수정 2009-09-2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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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들어 있을 오전 3시. 충남 천안시 북쪽 외곽에 위치한 천안청과 경매장에는 상인들의 부산한 발길이 이어진다. 사들일 물건을 재빨리 둘러보려는 눈길도 예사롭지 않다.

과일경매장의 새벽 공기는 말할 수 없이 달콤하다. 수박 참외 등이 신선함을 경쟁하듯 강한 단내를 내뿜기 때문이다. 채소경매장을 가득 채운 배추 무 등은 새벽 정기를 들이키며 싱싱함을 한껏 머금는다.

오전 4시.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 중 하나로 돌변한다. 혼잡 속에 숨겨진 질서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확성기로 경매품목과 수량을 쉼없이 외쳐대는 경매사들. 손가락으로 요란하게 주문을 내면서, 경매사의 눈길을 한시라도 놓칠세라 고성을 외쳐대는 중도매인들.

6년째 변함 없었던 이같은 새벽 풍경은 두달 전부터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떠들썩한 고함과 몸짓을 정보통신(IT)혁명의 파도가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중도매인들의 투박한 손에는 지금 무선 근거리통신망(LAN)카드가 장착된 최신형 컬러액정 개인정보단말기(PDA)가 쥐어져있다. 중도매인이 PDA에 가격을 적어 넣으면 무선랜을 통해 정보가 모아지고 컴퓨터가 낙찰자를 자동으로 결정한다. 경매 진행과 낙찰 상황이 차량에 실린 100인치 스크린에 공개되기 때문에 암호 같은 손가락 신호를 모르는 외부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천안청과는 또 경매결과를 오전 10시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워 생산자들이 경매장에 찾아오지 않고도 궁금증을 풀 수 있게 하고 있다.

28일은 과일경매장엔 역사적인 날이었다. 100% 경매물량을 무선랜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채소경매장은 손가락경매와 무선경매가 현재 반반씩 진행되고 있다.

손가락경매대에서는 중도매인들이 손가락으로 주문을 내면 경매사들이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을, 가격이 같을 때는 조금이라도 먼저 주문을 낸 사람을 낙찰자로 결정한다. 따라서 중도매인들은 경매사의 시선을 붙잡는 데 사활(死活)을 걸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무선랜경매대에서는 마이크를 잡은 경매사에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대부분 중도매인들은 ‘물건’을 둘러보며 PDA에 가격을 써넣는다. 그것도 조용히….

과일 중도매인 조병한씨(40)는 “경매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서 한가롭게 경매에 참여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천안청과 한영수사장(64)은 “종전에는 ‘내가 먼저 주문을 냈는데 나중에 낸 사람에게 낙찰됐다’는 등의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무선랜경매제를 도입한 이후 모든 과정이 투명해져 불신과 민원이 거의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생산자나 소매상들도 만족해 하는 눈치다. 충남 부여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김성훈씨(37)는 “종전에는 경매장에 와도 경매 진행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한눈에 알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또 중도매인들로부터 과일과 채소를 사 소매를 하는 A씨도 “종전에는 낙찰가를 몰라 바가지를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낙찰가를 알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값에 물건을 사는 일이 없다”고 흡족해 했다.

그러나 한 상인은 “걸쭉한 막걸리 같은 ‘인간 내음’이 사라지는 것 같다”면서 아쉬워하기도 했다.

<천안〓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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