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 1년 앞으로]경기장만 덜렁… 그나마 대충

  • 입력 2001년 5월 27일 18시 48분


경기장만 돋보이는 마포구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주변
경기장만 돋보이는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주변
《2002월드컵축구대회 개막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단순한 축구경기의 차원을 넘어 ‘인류의 축제’로 발전해 온 월드컵. 개최국은 국가 위상을 높이면서 개최 국민의 저력을 알린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월드컵 개최를 1년 앞두고 “한국의 월드컵 준비에는 경기장만 있다”는 말이 팽배하다. 특히 공동개최국인 일본과는 너무나 비교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한국의 월드컵 개최의 ‘현주소’를 차례로 짚어본다.》

수원월드컵경기장 개장식이 열린 13일 축구팬 권일주씨(35·자영업)는 아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수원역에서 택시를 탄 후 “월드컵경기장으로 가자”고 하자 택시운전사는 “가기 힘든데…”라며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옥신각신 끝에 경기장으로 출발하긴 했지만 가는 도중 운전사가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차를 험하게 모는 바람에 기분이 몹시 상했다. 운전사는 “막히는걸 뻔히 아는데 어느 운전사가 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려하겠느냐”며 투덜거렸다.

▼글 싣는 순서▼
1. 월드컵 준비의 불안
2. 인프라 구축의 현주소
3. 월드컵 열기와 문화의식
4. 흑자 월드컵의 고민
5. 공동 개최의 문제해결
6. 월드컵 개최 이후

사실 이날 수원역에서 경기장까지는 넉넉잡아 3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인데 한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교통 통제로 팔달구 지역이 거의 마비됐고 결국 수원시내 전체가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수원시 택시운송사업조합측은 “경찰이 이날 경기장 주변을 완전히 통제하는 바람에 팔달구는 물론 수원시 전체의 교통이 마비됐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 운전사의 불친절한 행동을 과연 서비스정신의 실종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쌍두체제 조직위 업무 혼선▼

이런 현상은 한국과 카메룬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이 벌어진 25일에도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개장식 때의 교통 및 주차 혼잡을 경험한 시민들이 미리 길을 나선 데다 대회 주최측이 임시 주차장을 마련해 문제점이 조금 덜 나타났을 뿐이었다.

이는 당초 9월 완공 예정이던 경기장을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 유치를 위해 개장을 5개월여 앞당기는 바람에 주변도로 정리와 주차장 확보가 안됐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수원시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 이미 개장한 울산과 대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덩그렇게 경기장만 지어놓았지, 월드컵을 치를 만한 기본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고 경기장은 만족할 만한가? 지난달 28일 국내 10개 개최도시 중 맨 먼저 개장한 울산문수경기장. 최첨단 공법으로 지었다는 경기장은 얼마 전 잠깐 내린 비에 지붕이 새 관중석이 온통 물바다가 됐다. 이 역시 ‘빨리 빨리 공법’으로 3개월 앞당겨 개장하는 바람에 마무리공사가 덜 됐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한국은 96년 월드컵 유치확정 후 개최도시 선정이 늦어지고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경기장 예산배정을 둘러싼 알력으로 2년여를 허송세월했다. 그러고도 “일단 남보다 먼저 경기장을 지어놓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경기장 조기건설에만 매달려왔던 후유증이었다. 그런데도 해당 건설사와 감독 관청은 “앞으로 보수공사를 하면 문제없다”며 느긋한 모습이다.

▼올림픽때보다 국민관심 줄어▼

월드컵을 공동 개최함으로써 한국과 비교되는 일본은 경기장 공기에 있어 한국보다 길게는 2년 이상의 기간을 더 잡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경기장을 완공시키고 있다. 특히 지진이 잦은 지역에서는 내진설계를 비롯해 기초공사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98년 3월 개장한 요코하마경기장에서 보듯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경기장을 완공한 데다 각종 국제대회 유치를 통해 경기장을 시험 가동함으로써 완벽한 월드컵 경기장을 추구하고 있다.

문제점은 ‘하드웨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월드컵개최를 선두에서 이끌 대회조직위원회조차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해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 단일 위원장에서 공동위원장체제로 바뀐 뒤 의사결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게 큰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공동위원장체제 출범 당시 “한 마리보다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더 힘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현 공동위원장체제는 인사문제와 결재과정에서의 대립과 혼선으로 얽히고 설켜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얘기가 됐다.

조직위 직원들조차 “효율적이지 못한 일 처리에다 조직위가 양분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털어놓고 있을 정도다.

사회분위기도 그렇다. 김윤수 월드컵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운영부장은 “서울올림픽 때는 너도나도 참여하려고 했었는데 올림픽에 못지않은 국가적 행사인 월드컵에는 국민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바로 “경제위기에 무슨 월드컵이냐”는 일부의 냉담한 국민의식이 무엇보다 큰 벽이 되고 있다는 것.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체육정책실 이용식 박사는 “정부주도로 준비한 88올림픽 때와 달리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다보니 곳곳에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자발적 참여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국가적 대사에서 국가 위상을 드높인다는 차원에서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국민이 의욕을 갖고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