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쟁점토론]30대그룹 출자총액 제한

  • 입력 2001년 5월 11일 18시 19분


《98년에 폐지됐다가 올해 4월 다시 부활한 출자총액 제한 제도를 둘러싸고 재계와 정부를 중심으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제도 부활을 찬성하는 측은 외환위기 이후 많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이 아직 황제경영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배구조가 갖춰질 때까지는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기업들은 이 제도가 기업들의 미래 투자를 가로막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내년 3월까지 순자산의 25%로 출자총액 비율을 낮추기가 어렵다며 반대하고 있다.》

▼찬성/'황제경영' 여전…정부규제 필요▼

최근 재벌기업들이 전경련을 비롯한 산하단체들을 앞세워 자신들에 대한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30대 그룹 지정제도나 출자총액제한 등은 외국에 유례가 없는 제도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출자총액 제한은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감소시키고 신규 미래산업에 대한 투자를 불가능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이 제도의 부활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출자총액 제한 제도의 순기능과 이 제도 폐지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인 재벌 지배구조의 실질적인 글로벌 스탠더드화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이 없다고 할 것이다.

출자총액 제한 제도는 재벌의 무분별한 문어발식 다각화를 방지하고 자신들의 핵심사업에 집중토록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외환 위기 당시 이 제도는 경제회생을 위해 한시적으로 폐지됐고 재벌들은 이 기회를 가공자본의 창출에 활용했다. 1998년과 1999년에 대규모로 실시한 유상증자에서 재벌기업들은 계열사간의 순환출자라는 편법적인 방법으로 실질적인 외부 신규자금의 조달 없이 가공적인 자기자본을 만들어 부채비율을 줄이고 경쟁력 없는 계열사를 유지시키는데 성공했다. 즉, 출자총액 제한 제도의 폐지를 이용해 실질적 재무구조 개선과 핵심사업에 집중하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1997년 36%였던 5대 재벌의 평균 계열사 지분이 1999년 48%로 늘어난 반면 평균 계열사 수는 52개에서 46개로밖에 줄어들지 않은 사실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출자총액 제한 제도는 재벌들로 하여금 미래 핵심사업에의 투자를 위해서는 경쟁력 없는 계열사를 포기토록 하는 규율의 순기능을 통해 궁극적으로 재벌의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 재벌들이 제대로 된 지배구조를 갖추어, 즉 소위 오너 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가 존재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소액주주의 권리가 보장돼 재벌의 무분별한 선단식 경영이 자체적으로 방지될 수 있을 경우 이러한 정부의 규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비록 법적 제도적으로는 사외이사제도를 강화하는 등 지배구조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별반 변한 것이 없다. 최근에 벌어졌던 현대그룹 2세들의 왕자의 난 과 삼성 계열사에 의한 이재용씨의 e-삼성 인수는, 총 자산의 3%밖에 소유권을 갖지 못한 오너 들의 황제식 경영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오너를 견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지배구조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1997년 경제위기를 가져온 주원인 중 하나가 재벌의 무분별한 다각화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명현(고려대 교수·경영학)

▼반대/신규투자 막는 비현실적 조치▼

기업은 속성상 항상 다른 회사에 출자하게 돼있다. 사업부를 법인으로 만들거나 IMT-2000과 같은 신규사업에 참여하면 새 회사에 출자한다. 합작법인을 설립하거나 유망한 회사를 인수해도 타회사 주식을 취득하고, 합병하거나 증자에 참여하면 출자액이 늘어난다.

출자를 통해 기업은 구조조정을 하고,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며 위험을 분산시키고 기업가치를 높인다. 미국의 GE는 경쟁력 없는 회사를 매각하고 유망한 회사를 인수하여 초우량기업이 되었는데, 타회사 출자가 금지됐다면 천하의 잭 웰치 회장도 지금의 GE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타회사 출자에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부실회사에 출자하면 주주나 채권자가 손해를 보고, 경쟁사를 인수하면 독점이 형성된다. 그러나 기업결합을 제외하면 타회사 출자는 주주와 채권자 등 이해 관계자들간의 문제이며 시장 안에서 해결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타회사 출자를 규제하지 않는다. 경쟁사의 주식취득(인수)이나 독점을 목적으로 한 출자는 기업결합에 해당돼 원래부터 금지돼 왔다.

1987년 한국은 시장이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해 출자총액 제한 제도를 도입했다. 그래서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 경영투명성, 회계제도, 소수주주권, 금융건전성과 금융감독, 적대적 M&A 등 여러 분야에 엄청난 제도개혁을 했다. 이제 출자는 이사회에서 걸러지고, 내용은 일반에 공시된다. 재무상황이 연결재무제표로 공개되고 계열사 출자분을 제외하고 부채비율이 드러난다. 빚이 많은 60대 그룹은 매년 주채무계열로 지정돼 출자는 물론 재무구조와 지배구조까지 관리받는다.

1998년 출자총액 규제가 폐지되자 30대 그룹은 구조조정을 하고, 부채비율 200%를 맞추느라 타회사 출자가 순자산의 25%에서 32%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다 올해 4월 출자총액 제한 제도가 부활하자 30대 그룹 계열사들은 구조조정이나 신규사업 진출이 막혔다. 구조조정 목적의 출자는 예외로 했지만, 3월 말까지 출자한 것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한도 초과분을 내년 3월까지 해소하기도 힘겹지만 구조조정이나 성장사업에 미리 진출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경제에도 여간 문제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업을 팔던지, 수익을 내고 증자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도 주택을 먼저 팔고 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2년간 2주택 보유가 인정되는데, 기업을 먼저 팔고 사다가는 사업 기회를 다 놓친다.

그간의 제도개혁과 시장개방으로 경제환경이 확연히 달라졌으므로, 출자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계열사 수는 경제력 집중과 무관하며, 퓨전경제에서 핵심역량은 수시로 변한다. 분초를 다투는 초경쟁시대에 경제력 집중 같은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기에는 기업환경이 너무 급박하다. 출자규제가 상시 구조조정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관련제도를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신종익(전경련 규제조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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