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껍데기만 남은 인권법

  • 입력 2001년 5월 1일 18시 34분


인권침해와 부당한 차별을 구제하기 위해 설립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법무부와 검찰의 기득권 지키기에 밀려 껍데기만 남은 꼴이 돼버렸다. 엊그제 국회를 통과한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위원회에 효율적인 조사 수단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이 위원회가 전시성 기구로 전락할 공산이 높아졌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이처럼 불구의 법률이 된 것은 법무부와 검찰이 그들 조직을 견제하고 감시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능 강화를 집요하게 방해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당초 인권위원회를 산하 민간기구로 만들려다 인권단체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이를 포기하는 대신에 조사의 범위와 수단을 약화시키는 전략으로 나와 관철시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엔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설립이 권장된 새로운 개념의 인권보호기구로 우리보다 앞서 40여개 국에서 이 제도를 두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다른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신분 출신지역 전과 등에 의한 사회경제적 차별을 조사하고 구제하기 위한 기구이다.

이 같은 기능을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는 다른 관료조직과 달리 인권단체와의 협력이 필수적인데도 대다수 인권단체의 반발 속에 법이 통과돼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법안 심사과정에서 국회 법사위원들 중 일부가 친정(검찰) 편들기에 나서 인권 단체들의 합리적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처사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인권위원회법은 수사가 진행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오더라도 각하하게 돼있어 악용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검찰과 경찰은 그들 조직과 관련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인권위원회 조사를 막기 위해 일단 수사 개시부터 할 가능성이 있다. 인권위원회의 조사권 배제 범위를 최소화했어야 옳았다.

인권위원회가 효율적인 조사활동을 수행하려면 국회의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준하는 조사권을 갖췄어야 한다. 그러나 서면조사를 우선하게 돼있어 피진정인을 직접 부를 권한도 없고 증인신문이나 위증 처벌권이 없어 과연 인권위원회가 실질적인 조사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인권위원회법과 함께 3대 개혁법안으로 불리는 부패방지법과 돈세탁방지법은 이번 회기에 처리하지 않아 입법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여야가 이 법의 무력화를 위해 담합한 인상이 짙다. 여야정치권이 정말 정치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불법 정치자금을 규제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부패 추방은 공염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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