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정위 때문에 기업 못하겠다'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40분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경제계의 반발이 거세다. 물론 감독당국을 좋아할 기업이 있을 리 없지만 최근 재계의 불만은 단순히 그런 차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공정위가 기업 의욕을 떨어뜨리면 그로 인한 불이익은 전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이남기(李南基) 공정거래위원장은 1월 4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의 부담을 덜어 경제 살리기에 동참할 수 있도록 상반기에 한해 기업에 대한 조사를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불과 3개월여가 지난 지금, 경제가 당시 상황보다 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는데도 공정위는 내달중 대기업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해 그 저의를 의심케 하고 있다.

힘겹게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기업들로서는 정부기관의 잦은 조사에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재계가 조사재개를 야기할 만큼 사회적 지탄을 받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공정위가 태도를 바꿨는지 다른 경제부처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공정위의 식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기업을 30대 그룹으로 지정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슬그머니 연기해 사기업과의 형평성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기업의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한다고 했다가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며 부활시킨 것을 비롯해 공정위는 자주 입장을 바꾸고 있다.

이 같은 태도 번복이 단순히 공정위 지휘부의 판단 미숙에서 빚어지는 일인지 아니면 공정위가 집권층의 눈치를 헤아려 ‘풍향’을 바꾸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공정위가 이런 식으로 신뢰성을 상실하면 이들의 기업조사결과 및 제재조치에 국민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부는 스스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부정책이 자율과 경쟁을 중시하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므로 내달부터 공정거래법의 문제점을 부각시킨 뒤 국회 상대의 법개정 운동에 나서겠다”고 한 것은 공정위의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재계가 오죽했으면 일방적으로 공격수단을 갖고 있는 공정위를 대상으로 그런 행동에 돌입할 결심을 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적이 아니다. 무소불위의 공정위가 권위주의적 행태로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아 경제가 실패한다면 그것은 곧 정부의 실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당국자들은 유념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