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새빨간 거짓말의 진실?

  • 입력 2001년 4월 8일 17시 47분


여자일까? 남자일까? 이 광고는 처음부터 애매한 성(性) 정체성을 가지고 출발한다.

다리를 꼰 채 도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여자. 윤기 흐르는 긴 생머리는 청순해 보이지만,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 블라우스와 딱 붙는 가죽 바지 차림은 섹시해 보인다. 팔 다리가 기다랗고 죽죽 빠진 늘씬한 모델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빠알개..' 특별한 반주 없이 그저 흥얼거리는 음률에 맞춰 노래가 나온다. 여자모델을 멀찍이 잡아 주지만 이렇다할 상황전개도 없이 붕 뜬 듯한 나른한 침묵이 흐르고..

드디어 가까이 모델을 클로즈업. 뚜렷한 이목구비, 가로로 긴 눈매가 매력적이다. 그녀가 침묵을 깨고 침을 꼴깍 삼킨다. 미모의 여자가 침 삼키는게 뭐 그리 대수인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의 반전은 뒤통수를 친다. 침 삼키는 찰나 두드러지는 그녀의 목젖! 아뿔싸. 남자였단 말인가.

'새빨간 거짓말' 붉은 색의 카피가 찍히고 그녀는 나직하게 웃는다.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이 단순한 장면조차 이중적이다. 여성스러운 손짓과 남성적인 목소리가 복합적으로 혼재하고 있다.

도통 모를 광고 빨간통 패니아.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체 무슨 얘긴지도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올법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당히 불친절한 광고다. 일체의 설명 없이 현재진행형으로 그 자리에서 '보여주기' 방식이다.

이 광고의 트릭은 '목젖'에 있다. 아름답게 앉아있는 여인이 사실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는 것. 그래서 새빨간 거짓말이다. 기획사측의 발상은 간단했을 것이다. 화제성 강한 성전환자를 모델로 기용하고 빨간통과 새빨간~거짓말 이라는 단어를 색깔매치하자는 것.

하지만 보면 볼수록 재미있다. 간단한 연상법을 가미해보자. 여자를 클로즈업하고 그 다음 목젖을 비추는 장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이 동요는 말잇기처럼 자연스럽게 뒤이어 부르는게 제맛이다. 그 다음은? '빨간건 사과'

목젖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아담즈 애플이다. 이브는 사과를 먹어도 걸리지 않았지만 아담은 사과가 걸려 목젖이 됐다는 얘기가 있다. 사과는 지혜의 의미와 더불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통한다.걸린 사과, 남자에게 미의 욕망은 금기였던 것이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이 광고는 금기에 대한 도발이 깔려있다. 목젖을 가진 자, 즉 남자는 화장해선 안된다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금기를 깬 점. 그리고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불편하게 인식하는 성전환자(트랜스젠더)가 최초로 광고에 출연한 점.

여자이면서 남자처럼 보이는 것인지, 남자인데 여자처럼 보이는 것인지. 아무런 말 없이 웃기만 하는 그녀는 시청자들의 해석을 다양하게 끌어낸다. 짚고 넘어갈 것은 광고의 설정상 목젖을 특수효과로 만들어 남자처럼 꾸몄지만 하리수란 이름의 모델은 여자다. 현재 법적으로는 남자지만 사회적인 의미의 젠더는 여성이다.

동성애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고 무엇보다 소수의 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당당한 통로가 될 수 있으므로.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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