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시위 방담

  • 입력 2001년 4월 3일 16시 38분


지난달 31일 일본 문부과학성, 자민당 등 6개 사이트를 상대로 진행된 한국 네티즌들의 '3·31 사이버 시위'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사이버 시위는 외신을 통해 전세계로 타전됐고 오노 모토유키(小野元之) 문부성 사무차관이 시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는가 하면 북한 평양방송도 외신을 인용해 시위 내용을 전하는 등 시위 여파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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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31일 사이버시위 상보

사이버 시위를 인터넷 상에서 중계한 동아닷컴 게시판에는 31일과 4월1일 이틀동안 2000여명이 글을 올리는 등 네티즌 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이에따라 동아닷컴은 취재 기자들의 방담 자리를 마련, 사이버 시위의 준비과정, 시위양상, 반응 등을 정리했다.

▼준비과정▼

-네티즌들이 조직적으로 시위를 벌였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지요?

-사이버 시위를 요구하는 글이 사이트에서 사이트로 옮겨지면서 네티즌 사이에 큰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습니다. 네티즌들이 또 다른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하면서 사이버 시위를 촉구하는 글이 급속도로 확산된거죠.

-언제부터 사이버 시위를 요구하는 글들이 게시판에 올랐나요?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3월 중순부터 집중적으로 게시판에 실렸습니다. '자칫하면 한국은 자진해서 일본과 합병했다는 왜곡된 내용이 모든 일본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릅니다. 역사왜곡 일본 중등교과서 검정통과에 반대하는 총궐기를 제안합니다'라는 내용이었죠.

-시위 2~3일 전에는 다음, 네띠앙 등 포털사이트와 PC통신 게시판은 물론이고 대학동문회 홈페이지에까지 제안서가 떠있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아마 시위 전날인 30일 이 글을 한번이라도 보지 않은 네티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각 사이트에서 제안서를 본 네티즌들이 31일 시위에 동참하게 된 거죠. 물론 언론에서 계속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구요.

-사이버 시위를 준비한 당사자들도 이렇게 호응이 클 줄은 몰랐을 겁니다. 정확한 참가인원을 알 순 없지만 동아닷컴 게시판의 글이 단시간에 2000건 이상 올라온 것으로 볼 때 아마 최단 시간, 최대의 접속자수를 기록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당일 동아닷컴의 접속이 한때 느려지자 동아닷컴이 기습을 당하지 않았나 걱정하는 네티즌도 다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지난 3월1일에도 사이버 시위 계획이 추진됐었지만 크게 알려지지 않아 참가자들이 매우 적었다고 합니다.

▼문부성 서버 가장 먼저 다운 ▼

-시위 시작 시간이 되기도 전에 문부성 접속이 느려진 것도 한국 네티즌들의 시위때문이었다고 봐야할까요?

-오전 9시부터 하기로 예정됐었는데 시위 대상으로 정해진 6개 사이트가 31일 오전 8시 30분부터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9시를 기다리지 못한 일부 네티즌들이 접속을 시작하는 바람에 접속 속도가 30일에 비해 서서히 느려진 것 같습니다.

-오전 9시가 되자마자 1차적으로 문부성 홈페이지에 접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20분경 산케이신문을 비롯한 모든 사이트의 접속이 느려지면서 접속 불능 상태가 됐습니다.

-어느 사이트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었나요?

-문부성 사이트 입니다. 처음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3시간 간격으로 30분씩 무차별 접속을 할 계획이었는데 나중에 문부성을 필두로 6개 사이트를 차례로 마비시키자는 것으로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문부성 사이트는 오전 9시가 되자마자 바로 다운돼 버린거죠.

-하루 종일 계속된 사이버 시위는 오전과 오후로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전에는 별다른 기술을 구사하지 않는 무차별적인 '새로고침파'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그러다가 오후에는 네티즌들의 시위 양상이 조직적으로 변했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이 자동으로 '새로고침'을 누르게 하는 '3·31 남벌'이라는 프로그램을 게시판에 올려 다운을 받게 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불법적'일 수 있다는 네티즌들의 자제요구도 있었습니다.

-사이버 시위에 대비해 사이트를 폐쇄한 곳도 있었죠?

-예. 역사교과서 출판사인 후쇼샤가 자체적으로 사이트를 폐쇄했습니다. 아예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다고 나타난거죠.

-아이디를 'ㅋㅋ'라고 적은 한 네티즌은 "이런 짓 해봤자 소용없다"는 등 네티즌들의 행동을 비꼬는 글을 계속 올려 게시판 내에서 집중 난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사이트 역습설, 한때 긴장 ▼

-청와대 사이트가 역습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예. 오후 2시쯤 역습에 대한 소동이 있었습니다. 청와대와 동아닷컴 사이트가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청와대 사이트에 접속이 되질 않았습니다. 순간 역습일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죠. 이러다가 양국 네티즌간의 사이버전쟁이라도 벌어져 주요 기관의 사이트가 마비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했습니다.

-네티즌들은 공격만하다가 방어를 제대로 못했다면서 "어떻게 청와대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느냐"고 항의하기도 했죠.

-그러나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청와대 홈페이지는 일본 네티즌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서버를 교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네티즌들에게 취재결과를 알려줬더니 잠잠해지더라구요.

-뒤늦게 청와대 홈페이지에 접속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네티즌이 청와대 홈페이지가 공격받은 것 같다고 글을 올리자 네티즌들이 동아닷컴의 취재내용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쓸데 없는데 신경쓰지 말고 시위나 하라고 채근하기도 했습니다.

▼산케이신문 서버관리자는 '프로'▼

-대부분의 사이트가 다운됐지만 산케이신문 사이트가 정상대로 작동되자 네티즌들은 오후 9시 시위때 산케이신문에서만 시위를 하자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로 보이는 권모씨가 "산케이신문은 서버가 4개이며 각각의 서버가 연동된다"는 정보를 게시판에 올리자 네티즌들은 3개 팀으로 시위대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네티즌들이 1,2번 서버는 서울·경기, 3번 서버는 전라·충청·북한, 4번 서버는 경상·강원·제주가 각각 맡자고 임무를 분담한 것입니다.

-결국 산케이신문 서버도 일시적으로 다운되기도 했으나, 1번 서버의 기능이 정지되면 2번 서버, 2번 서버 다음엔 3번 서버 식으로 4대의 서버가 연동되는 시스템이어서 인지 곧장 정상적으로 작동을 했습니다. 이 바람에 산케이신문의 서버가 다운됐다고 외치는 네티즌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다운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네티즌이 있는 등 혼선을 빚기도 했습니다.

산케이신문의 서버관리자는 기술도 프로지만 서버를 지켜야한다는 직업정신도 투철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네티즌도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당초 계획에 없던 일본 총리 공관의 홈페이지가 즉석에서 사이버 시위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시위 방법 ▼

-한국 네티즌들이 이번 사이버 시위에 사용한 방법도 천차만별이었죠?

-그렇습니다. 네티즌들은 문부성, 산케이신문 등 6개 홈페이지에 일제히 접속해 새로고침 버튼을 누름으로써 서버에 장애를 일으키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새로고침 버튼을 일일이 누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네티즌들이 앞다투어 추천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들이 동원되었는지요?

-컴퓨터 자판에서 새로고침 버튼의 단축키인 F5 버튼을 고정시켜 놓는 방법이 주로 언급됐습니다. 한 네티즌은 성냥개비를 이용해 F5 버튼에 끼워넣는 방법을 권했고, 어떤 네티즌은 상처치료용 연고의 납작한 부분을 버튼 사이에 끼워넣으라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핸드폰 같이 무거운 물건을 버튼 위에 올려 키를 고정시키라고 추천한 네티즌도 있었고, 아예 테이프를 이용해 버튼을 키보드에 붙여놓으라고 권하는 네티즌도 있었습니다.

시위 당일 MT를 떠난다고 밝힌 한 네티즌은 컴퓨터를 켠 채 이쑤시개를 버튼에 쑤셔넣고 집을 나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된 셈이군요. 저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동으로 서버에 장애를 주는 네티즌도 봤습니다.

-그렇습니까?

-일명 핑(Ping)이라는 것인데요. 원래는 해당 사이트에 접속되는 시간을 체크하는 것인데, 네티즌들은 이 프로그램이 새로고침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는 데 착안했던 것 같습니다. 대상이 된 6개의 해당 사이트를 일일이 창에 띄워놓고 번갈아가며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라고 권하는 네티즌도 있었습니다.

-시위가 지속되면서 일종의 주도자 그룹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했는데요. 아이디를 P라고 소개했던 네티즌은 시위의 고비때마다 등장해 참여자들을 격려하고 시위 상황을 전달해 분위기를 끌어가기도 했습니다.

▼시위에 대한 반응 ▼

-이번 사이버시위의 성격에 대해 한·일 네티즌들의 생각이 크게 달랐죠?

-한국 네티즌들은 사이버 '시위'로 규정한 반면 일본 네티즌들은 '사이버 테러(サイバ-テロ)' '폭력(暴力)' '공격(攻擊)'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일부 일본 네티즌들은 한국 네티즌들이 '테러' '폭력' '공격'을 한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처벌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야후재팬(www.yahoo.co.jp)의 '월드컵' 관련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면 이러한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한 네티즌은 "한국의 젊은이는 무의미한 파괴행위에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전체가 일본에 대한 파괴·방해행위를 영웅시하는 배경이 있다"고 힐난했습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사이버 테러를 하고 있는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고 비난했고 "비정상적인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한국 교육이 근본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라고 혹평한 네티즌도 있었습니다.

-사이버 시위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동아닷컴에 대해 네티즌들의 평가는 어땠습니까?

-네티즌들의 반응을 구체적으로는 알길이 없습니다.당일 게시판에 동아닷컴과 관련된 글은 대부분 동아닷컴을 두둔하는 내용이었지만 시위를 조장한다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한 네티즌은 "동아닷컴은 노골적으로 테러(사이버 시위를 지칭)를 즐기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사실 사이버 시위를 실시간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하다보니 한 네티즌의 지적대로 '오버'하는 면이 있지나 않았는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북한도 관심 ▼

-이번 시위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도 관심을 보였죠?

-예. 북한 평양방송이 이례적으로 사이버 시위를 보도했습니다. 평양방송은 3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행위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남측 네티즌들이 일본 정부 및 정당, 단체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공격했다고 전했습니다.

평양방송은 남측 사이트에는 표적이 되는 일본측 홈페이지 명단이 제시돼 있고 접속날짜와 시간을 지정했으며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150만명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말했습니다.

-시위가 치열하다보니 일본 문부성이 공식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오노 모토유키(小野元之) 문부성 사무차관이 2일 역사 교과서 검정을 둘러싸고 문부성 홈페이지에 네티즌들의 공격이 집중된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오노 차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주말인 31일 문부성 홈페이지에 평소의 60배에 달하는 접속이 몰려 홈페이지를 거의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유감의 뜻을 밝혔습니다.

▼시위자 처벌문제 ▼

-일본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사이버 시위를 처벌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죠?

-해킹처럼 상대방의 데이터를 파괴하는 행위는 국제적으로도 처벌대상이지만 단순히 사이트 게시판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사이버시위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지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사이버 시위 처벌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어떤가요?

-정보통신부와 경찰은 이번 사이버 시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처벌 여부도 달라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의 단순한 항의접속으로 볼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특정 사이트에 대한 서비스공격(DOS)으로 볼 때는 상황이 다르다는 겁니다.

-고광섭 정통부 정보보호기획과장은 "특정 사이트를 공격할 목적으로 공격용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면 처벌대상이 될 수 있지만 단순히 접속을 많이 시도하는 행위까지 처벌하기는 어렵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서비스 거부공격의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징역 5년 이하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번 시위 관련자에게도 이 법률을 적용할 수 있습니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 네티즌들은 동시에 대량 접속을 시도하는 방법을 썼기 때문에 악의적인 서비스공격 도구나 해킹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는 게 대세인 것 같습니다.

-경찰이 조사에 착수한다고 하던가요?

-관망하는 자세인 것 같습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하욱현 단장은 "일본의 요청이 있다면 수사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일본 내 사이트의 다운이 한국 네티즌 때문이라는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여러 정황을 놓고 볼 때 처벌이 어렵겠네요?

-지난해 한국과 일본간의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양국 네티즌간의 관련 사이트 해킹 사건을 비롯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국과 대만간에 유사한 사례가 일어난 적이 있었지만 가담자가 처벌된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동아닷컴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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