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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4월 1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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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규상 '직무범위' 벗어나▼
물론 민주당은 부인했지만, 혹시 최근의 국정 난맥상을 예측하지 못했다거나, 주요 현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차원의 기여가 불충분했다는 등의 반성에 따른 것은 아닌지 사람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국정예측정보'란 무엇이며, 국정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국정을 예측해 대통령께 보고하겠다는 것인가. 최근 정치인들을 전진배치한 개각의 의도와 그에 따른 정국의 상황을 감안할 때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국정원법에 따르면 국정원의 직무범위는 명확하게 한정돼 있다. 국가안보에 관한 정보 수집, 국가안보 관련 범죄와 국정원 직원의 직무관련 범죄의 수사, 그리고 정보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이 그것이다. 여기에 국정예측이란 직무는 없다.
그러면 '국정예측정보'란 어디에 해당하는 것인가. 물론 국내정치에 관한 정보 가운데 국가안보와 연관된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안보 관련사항일 뿐 따로 국정예측정보 라고 부를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 정치적 연관성에 혐의를 두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한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원하는 정치 관여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나 여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일단 임명된 다음에는 국정원법에 정해진 소정의 직무만 수행할 수 있고, 특정 정당이나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을 지원하거나 유리하게 하는 정치 관여가 금지된다.
이처럼 국정원을 정치에서 절연시킨 것은 단순한 미사여구나 역사적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 국가안전기획부, 중앙정보부 등이 독재정권의 수족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정치에 개입했던 사실에 대한 뼈저린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 관여 금지에 걸리지 않는 국정예측정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는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명하면서 국민을 향해 자기혁신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 것을 기억한다. 권력기관으로서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는다며 정치개입 관련 부서들을 폐지하고 정치공작 의혹을 살 수 있는 활동을 금지하는 등 국정원이 보여준 변신의 노력에 갈채를 보내면서도 그것을 100% 믿기 어려웠던 것은 바로 임명권자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자신을 임명해준 대통령으로부터 과연 정치 관여금지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냐는 것이었다. 국정원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거듭나려면 우선 정권 차원에서 그것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결단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시 의문이 생긴다.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고 임명되는 국정원장에게 정치적 중립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신임 국정원장이 국정을 예측해 대통령에게 보고하겠다고 한 데 대해 의혹을 갖는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안보예측'에 전념하길▼
우선 오랜 법조경력을 가진 신임 국정원장이 스스로 국정예측기능 을 강조한 진의와 연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이 점은 국회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지만, 그를 임명한 대통령도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 문제에 관건을 쥔 당사자로서 그 문제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해소해 줘야 한다. 국정원이 과거 음험한 정권안보기관의 이미지를 씻어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노벨평화상 수상에 빛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인권과 민주주의 분야에서 이룩한 치적의 하나로 꼽히게 될 것이다.
불필요한 의혹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국내정치에 관한 것 말고도 정작 예측해서 대통령께 보고해야 할 국가안보에 관한 정보는 많다. 한반도 주변정세나 남북관계에 관한 주요 강대국과의 정책협조문제, 통상문제나 국제환경문제 등 할 일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국정원이 자칫 정권 재창출같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본연의 임무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홍준형(서울대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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